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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SM소설, 수위소설) 아르바이트-주리 1

그의 혀가 온몸을 휘젓고 있었다. 마치 살점을 뜯어먹으려는 듯
`무지막지한 아픔으로 주리는 다시 이를 악물었다.
다시 사내가 위로 올라왔다.
예리한 송곳으로 마구 찔러대는 듯이 침범해 오는 아픔을 느끼며
그녀는 거의 정신을 잃다시피 했다.
사내는 미친 듯이 공격해 오면서 양손으로는 주리의 엉덩이 아랫
부분을 어루만졌다
주리는 끝내 몸서리를 치다가 널브러졌다.
가물거리는 어둠 속으로 후닥닥 달아나는 발자국 소리가 어렴풋
이 들렸다. 어둠이 사방을 잃어버리고 눈앞에서 빙빙 도는 듯했다.
그녀는 사지를 늘어뜨린 채, 겨우 숨을 몰아쉬었다 한바탕 화산
이 제멋대로 폭발하고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처참하기만 했다. 자
신의 육신 어디가 어떻게 갈가리 資어졌는지 아픔조차 느낄 수 없
도록 온몸이 뭉개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까무룩이 잦아드는 흔곤함 속에서 주리는 하늘에 박혀 있는 별빛
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그 어디에도 하늘의 별은 보이지 않았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
렇게 처참하게, 순식간에 자신이 없어져 버리는 듯한 비참함을 맛
보기는 처음이었다
자신을 노리는 이리떼들이 득실거리는 이 도시가 까마득하게 느
겨졌다. 자신이 여태껏 키워보려고 애를 썼던 그동안의 모진 꿈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것이었다.
주리에겐 더이상의 꿈도, 좌절도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까스로 일어났다. 팔다리가 제각기 따로
노는 것만 같았다. 아직도 묵직하게 남아 있는 듯한 통증이 다리 사
이로 번져 왔다.
움직일 때마다 예리한 칼날로 후벼파는 듯한 통증. 예민한 꽃잎
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느끼면서 그녀는 얼른 길가로 빠져나왔
'이런 서울에서도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할 수가 있다니
그녀는 이제 모든 것이 낯설고 무섭기만 했다, 마치 나쁜 운명의
올가미에 덧비워진 것처럼 자신의 몸 어딘가에 운명의 썩은 올가미
가 남아 있을 것만 같았다.
운명치고는 너무 잔인한 장난 같았다.
산부인과의 낯섬
'남주리 씨."
간호원이 이름을 불렀다
주리는 실내가 산뜻해서 더욱 칙칙하게만 느껴저는 대기실 의자
에 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간호원이 납빛 얼굴을 한 채, 방금 일어서고 있는 그녀를 발견하고
"대답 좀 하세요. 누군지 알아야지요."
하며 짜증을 부렸다.
주리는 간호원이 사람을 알아보고 저러는구나 싶었다, 갑자기 서
글픔이 솟구쳤다. 안 그래도 잔뜩 주눅이 든 얼굴헤 어둠살이 더욱
깊어졌다.
"수술하러 왔어요? 생리는 언제부터 없었어요?"
간호원은 미리부터 알아차리고 묻는 듯했다. 주리는 그 앞에서
잠간 망설였다. 갑자기 필름이 끊어져 버린 사람처럼 멍하게 그녀
를 쳐다보았다.
"생리가 언제부터 끊어졌냐구요?"
간호원이 밀린 진료객들을 둘러보며 다시 한 번 물었다. 그 물음
에는 다분히 적의가 깔려 있었다. 얼굴이 반반한 게 어쩌다가 임신
을 했지, 하는,
거의 나이가 비슷한 처지인데도 간호원은 당당하게 물었고. 그
대신 주리는 자꾸만 비굴해진다.
"잘. ., 모르겠어요. 너무 까마득해서,,,,,,."
엉뚱하게 튀어나온 주리의 말에 간호원이 웃었고, 그 소리를 들
은 옆의 여자들도 웃어댔다. 손을 가리며 웃는 여자들을 보며 주리
는 더욱 민망해졌다.
왜들 이러는 거지. 내가 무슨 죄를 졌나. 하는 억한 심정만이 온
몸을 휘감고 있었다
"그것도 몰라요? 그러면서 어떻게,,,,,,."
간호원은 아예 주리의 기분쯤은 무시하는 태도다. 데스크 위의
종이에 아무렇게나 몇 자 직직. 갈건 쓰더니 불쑥 종이를 내민다.
그리고 볼펜까지도.
"이게...,,, 뭐예요_"
"읽어보세요. 수술 동의서예요."
주리는 수술 동의서라는 말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마음
보다 먼저 다리부터 후들후들 떨렸다, 그리고 볼펜을 쥔 손에 경련
이 일어나듯 떨리기 시작했다.
'이러고 싶진 않았는데, , , ,
정말 이런 일은 안 일어날 줄 알았
는데,, ,
주리는 머릿속이 텅 빈 것처렁 아득해졌다.
'빨리 쓰세요. 시간 없어요."
간호원의 퉁명스러움에 주리는 어떻게 볼펜을 움직였는지 모른
다.
하얀 백지에 쓰인 글을 읽는 등 마는 등 빈 칸을 메워나갔다 그
러고 나서 인주를 묻혀 꾹 눌렀다.
그것도 간호원이 재빨리 주리의 엄지손가락을 집어 눌렀기 때문
이었다.
"좀 기다리세요."
간호원은 그 말을 하고는 얼른 수술실로 들어갔다. 주리는 제자
리로 돌아와 앉아 있으면서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는 비난의 눈초리
를 느껴야만 했다.
같은 여자이면서 동정 따윈 찾아볼 수 없는, 새파란 젊은 것이 어
쩌다 일찌감치 헛길로 접어들었나. 하는 시선들이었다.
주리는 속이 메스꺼웠다. 병원에서 나는 특유의 알콜냄새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녀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변기에다 얼굴
을 처박고는 몇 번 토하려고 했지만 속에서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
었다.
괜히 헛구역질만 한참을 해대다가 노란 위액만 토해내고는 밖으로 -.
나왔다
이때, 간호원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들어오세요."
그 말에 주리는 기죽은 표정으로 간호원을 따라 수술실로 들어갔
다,
아무리 당차지려고 해도 마음먹은 대로 되질 않았다. 괜히 주눅
이 드는 것이었다.
수술실로 들어서자, 두꺼운 배를 내민 의사가 가운을 입은 채, 턱
짓으로 침대를 가리켰다.
누우라는 뜻인 줄 알고선 그 위로 가서 누웠다. 그리고 머뭇거리
고 있는데
"여기선 옷을 벗어야 돼요."
간호원이 다가와서 아랫도리를 벗겨내렸다, 주리는 눈을 찔끈 감
아 버렸다. 간호원이 속옷을 벗길 때까지 그녀는 눈을 감는 데에만
온통 신경을 썼을 뿐이었다.
답답했던지 간호원이 옆에서 타이르듯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 묻잖아요."
그제서야 그녀는 눈을 떠서 의사를 바라보았다, 의사가 굵은 테
의 안경을 긴 채, 자신의 아랫도리를 들여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의사의 굵은 머리통만 보였다.
"언제부터 생리가 끊겼지요?
"모르겠어요,,,,,, "
의사가 머리를 들어 주리를 바라본다.
간호원과 잠시 눈길을 마주치던 의사가 알았다는 듯이 다시 물어
왔다
"어디서 그런 일을 당했어요-한 사람한테 그랬어요? 지금. 헐어
있어요. 치료를 받은 적이 있나요-
"아뇨,,,,,,."
주리는 얼굴을 붉혔다. 자신의 비밀을 다 들켜 버린 것처럼 난감
하기만 했다.
허벅지에서 작은 경련이 일어났다. 갑자기 오싹한 느낌이 전해졌
다 會斗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를 떨고 있는 게 보였는지 의사가 다시 친절하게 말을 걸어
왔다.
'떨지 말아요. 안 아프게 해줄 테니까. 몇 사람한테 이런 일을 당
했어요-
두 사람이요."
그녀는 간신히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김 대리의 얼굴이 잠
간 스쳤다. 그녀는 다시 마치 문등이 얼굴을 본 것처럼 가슴이 떨려
왔다.
'학생인 것 같은데. 맞아요?
그 말에 주리는 저절로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렇
---
게 자신을 내보이고 나서야 겨우 수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이태껏 숨겨온 자신의 성이 완전히 폭로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비참함이었다.
"이렇게 수술을 하면 나중엔 임신이 안 될 수도 있어요. 알아듣겠어요
주리는 눈을 감은 체로 네, 라고만 대답했다 머릿속이 어지러워
다른 생각은 할 수조차 없었다. 그저 묻는 말에 짧게 네, 라고만 대
답하는 것이 전부였다,
의사가 자신의 꽃잎을 벌린다는 느낌이 왔다. 그리고 얇.은 고무
장갑을 낀 손가락이 깊숙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느낌도 알 수
있었다
몇 번인가 질벽을 긁어대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자
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꽃잎과 질벽이 움찔거려졌다. 낯선 이물
질에 반응하는 본능이었다.
"이제 마취제 주사를 놓을 테니까 하나부터 계속 헤아리세요.
알았죠?
의사는 유치원 선생처럼 굴었다, 말끝마다 알았죠-하고 되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주리는 짧게 네. 라고 대답했다.
바늘끝이 살점을 파고드는 걸 느꼈다. 그때부터 주리는 하나, 두
울. 세엣을 세기 시작했다.
몇을 세었을까. 점점 의식이 가물거려지면서 몸이 밑으로 가라앉
는 느낌이었다, 마치 물 속 깊은 데로 빨려들어가는 몽롱함 속에서
의식이 깜박거리다가 끝내 잦아졌다.
회복실에 누워 있으면서 아랫도리의 통증이 짧고 강하게 다가왔
다간 멀어지곤 했다, 그것은 여러 번 계속되었다, 속이 울렁거리면
서 토할 것만 같았다.
마취가 깨면서 아랫도리가 아픈 것도 아픈 것이었지만 속이 영
편칠 않았다 입 안에서 자꾸만 신물 같은 게 넝어왔다,
그녀는 틈만 나면 입 안에 고인 침을 뱉어냈다. 옆에 누워 있는
중년을 넘은 여자가 넌지시 바라보고 있는 것도 구토를 일으킬 만
했다,
사십대에 가까운 여자. 그 여자는 이미 이력이 난 사람처럼 조용
히 누워 이쪽을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아줌마. 원래 그래요-자꾸 토할 것만 같은데."
주리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물어봤다. 그제서야 여자는 히죽 웃
어보였다.
"원래 그래요. 나도 원치 않은 임신이지만 할 때마다 후회를 해
요. 여자란 그래요 남자들 때문에 이러는 거 아녜요. 이젠 진절머
리가 나."
사십대의 여자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줌마는 피임을 하면 되잖아요?
주리의 말에 여자는 얼른 얼굴빛을 감추었다, 약간 당황하는 듯
한 눈빛이었다.
그러다가 내친 김에 말하자는 투로 나왔다.
"피임이야 하지. 남편이야 장화를 신고 하지만 어디 그러고 싶겠
어요? 지가 좋으니까 지멋대로 하다가 임신한 거지."
주리는 처음엔 장화라는 말뜻도 몰랐다. 그리고 여자가 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도 몰랐었다.
"장화를 신고 했다는 게 뭐예요?'
"이런-쭌쭌. 장화가 콘돔 아니우. 다른 놈과 몰래 즐기다가 글쎄
장화를 신지 않고 하는 바람에 이런 생고생을 하는 것 아뉴. 아직
숫처녀네 그래. 그런 것도 모르는 걸 보니,
주리는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다른 남자와의 관계에서 일
이 터졌다는 것을, 주리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배어나오려고 그
랬다
'그럼, 아줌마는 다른 남자와 같이 잠을 잤다는 거예요?
주리의 말에 회복실에 있던 여자들이 웃어댔다. 어떤 여자는 웃
음을 참느라 쿡쿡, 하는 소리를 냈다.
"아, 여기 오는 여자들치고 남편하고 해서 굳이 애를 떼려고 오는
여자가 어딨겠어. 잘못하다가 덜컥해서 몰래 날짜를 받아 수술하러
온 거지. 이런 고생하고 나면 며칠 동안은 그짓 하고 싶지도 않아
정신이 번쩍 들지. 그러다가 잊을 만하면 또 그런다니까. 그게 여자
들의 얄궂은 운명이라는 거야. 재 봐. 잰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어
쩌자고 그랬는지 몰라. 쫏쯧,,,,,,."
삼싣대 초반의 여자의 말에 주리는 반대편에 누워 있는 여자 애
를 쳐다봤다 이제 갓 대학생 티를 벗었을까 말까 한 앳된 여자 애
가 훌쩍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눈시울이 벌겋도록 훌쩍거리면서 모로 누워 있는 소녀의 등이 조
그맣게 흔들리고 일었다_ 여자들의 눈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려졌
다.
"재는 아직 대학생이래. 여덟 명이나 되는 남자들한테 돌림방을
당했다지 뭐니. 글쎄. 한창 클 나이에 여덟 명씩이나 올라탔으니 몸
이 제대로 견뎌냈겠어 그쯤 되면 어느 놈 씨앗인지도 모르고 임신
이 되었겠지, 의사가 혀를 차더라니까."
사십대의 여자가 혀를 끌끌 차며 말을 하자. 그 옆에 누워 있는
여자들도 전부 혀를 차는 시늡을 했다. 그러고는 안됐다는 얼굴 표
정을 지었다.
저마다 사연이 있어 중절수술을 받으러 온 여자들이지만 대학생
밖에 안 된 여자 애를 바라보며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여자의 운명
같은 걸 공감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차암, 세상 험악하다. 저런 어린 것들을 갖고 어떻게 했을까? 무
슨 맛이 있겠고, 우슨 진미가 있어서 돌아가며 죽을 듯이 그랬는지
모르겠어 ."
삼십대의 여자의 말에 다른 여자들이 킥킥, 웃었다.
"아, 그야. 남자들이란 그것밖엔 모르는 동물이니까. 남자보고 콘
돔을 하라고 하면 마구 인상을 쓰지 않아요. 생으로 하는 게 낫다고
그러면서 고집을 피우면 우리 여자들이야 그때쯤 한참 달아 있는
중이니까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계
속하다가 보면 저 흔자 나동그라지지 않아요, 그 다음에는 나 몰라
라 하는 식이니까 아예 처음부터 여자들이 단단히 조심하지 않으면
맨날 이런 곤욕을 치르지요 뭐. 남자들이야 어디 인정사정이 있나
요? 처음하고 끝하고는 완전히 다른 인간들이지 , ,,"
여자들은 이미 그런 이야기에 흥을 돋우고 있었다, 대학생 여자
애는 계속 울고 있었고_주리는 주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계
속 소녀에게로 눈길을 던지곤 했다.
깡마른 여자 애의 좁은 등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힙합 바지를 입
은 소녀에게선 어느 정도 불량기가 묻어났다. 그리고 머리카락은
탈색 코팅을 해서 멋을 부린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한번씩 긁어내고 나면 섹스할 맘이 싹 달아나다가도 다시 온몸
이 근질근질해지는 게 이상하죠? 그거 안 하고는 못 배기는지 모르
겠어요."
삼십대의 여자는 은근히 다른 여자들의 속사정을 떠보듯이 말을
던졌다.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사는 게 다 뭐겠어요. 사람은 죽을 때까
지 그짓만 하다가 죽는다고 하지 않아요. 남자란 동물은 지푸라기
를 잡을 힘만 있으면 할 수 있다고 하고, 여자는 누워서 다리를 벌
릴 힘만남아 있어도 할수 있다고하잖아요 ."
'그거 하는 재미가 없으면 사는 재미가 없지. 남편하고야 한 달에
겨우 한 번 할까 말까 하겠지만,,,,,, 매일 해도 질리지 않잖아요?
안 그래요."
그 말에 여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이불로 온몸을 친친
감은 채, 그것에 대한 이야기로 본격 몰입하려는 듯한 표정들이었
다.
아직 누워 있는 사람은 대학생 소녀와 주리뿐이었다. 주리는 여
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끔 옆에 누운 여자 애를 바라보
곤 했다.
여자들은 아직 마취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깔깔거리며
무용담들을 풀어 놓기 시작했다.
"이럴 때를 준비해서 한 달에 한 번씩은 남편이랑 걸릴 만한 날짜
에 하는 게 좋아요. 혹시 이런 수술을 했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빠져
나갈 수 있게 말예요. 남편이랑 해서 걸렸다고 오리발 내밀 수 있게
걸릴 시기에 한번쯤은 같이 하는 게 좋아요. 전 매달 그렇게 하는걸

그 말에 여자들이 새로운 것을 발견이나 한 듯이 반색을 했다.
'한아요. 그렇네요 그럴 땐 콘돔도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게 좋
겠네요. 만일을 생각해서 말이에요. 호호호."
삼십대의 여자가 말을 받았다.
'그럼요. 그리고 정부하고는 될 수 있으면 임신 가능한 날짜엔 안
하는 게 좋겠어요. 난 그런 날을 피해서 만나거든요. 그게 그래도
좀 안전하더라고요."
또 다른 삼십대의 여자가 말을 꺼내자,
"아, 그래서 댁은 덜컥 했어요? 그렇게 피했다고 임신이 안 된다
는 보장이 있어요?
하고 핀잔을 주듯, 퉁명스럽게 말을 했다
"아녜요, 그건 그 치가 하도 조르길래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
라는 식으로 내버려둬서 걸린 거지요. 그때는 이상하게도 기분이
한껏 달아올라 있는데 자꾸 하자고 조르니까 자포자기하는 마음으
로 했지요 뭐. 그게 하필 덜컥 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럴 때는
지아무리 지조가 굳은 여자라도 참아내기가 어려웠을 거예요."
"아이구, 말은 참 잘 하시네 지조가 굳은 여자가 뭐 미쳤다고 그
런 분위기에 횝싸일 정도로 헤프게 막 나가겠어요-지조가 없는 여
자들이니까 여기 이런 데 와서 마취가 깰 때까지 회복실에 누워 있
는 거지."
여자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읊어댔다. 마취가 풀리면서 입이 근질
근질거리는 것처럼.
그러다 보면 마취도 일찍 깨어날지도 모른다. 떠들어대면서 자연
스레 마취가 풀릴 거라는,
'난 말예요. 가끔, 걸릴 만한 날짜에 하게 되면 그 남자보고 배
우에 사정하라고 말하기도 하죠. 그러면 그대로 하는 수가 있더라
고요. 가끔씩은 남자도 그런 걸 좋아하는 것도 같았고요. 기분이 좀
이상하긴 해도 한두 번은 그런 식으로 하는 것도 싫진 않았어요. 그
런 경험도 있어요?
삼십대의 여자는 마치 색다른 경험을 했던 것처럼 주위를 둘러봤
다.
"아, 그건 옛날 방식이지 뭐예요. 난 그런 방법 저런 방법 다 써
봤어요. 왜 하다가 보면 자연 꾀가 생기는 거 아니겠어요. 난 급한
김에 손바닥으로도 받아본걸요. 어찌나 물컹거리는지. 속에서 구'
질이 나려고 했지만 남자 앞이라 억지로 참았어요."
二 말에 여자들이 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여자들의 말은 한도 끝도 없었다. 회복실의 여자들이란 한번 만
났다가 곧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가 쉽지 않았으므로 흥허물을 털어
내 놓기를 좋아했다. 그런 말들은 동네 미장원엘 가서도 쉽게 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전요. 남자가 얼마나 오래하는지 한번 하고 나면 곤죽이 돼요.
무슨 고래 심줄을 삶아 먹었는지 한번 달라붙으면 떨어질 줄을 모
른다니까요. 나중엔 거시기가 벌겋게 되도록 끝없이 하고 나면 다
리가 휘청거려요. 나중엔 분비물이 없어 뻑백한데도 자꾸 씨근덕거
리면 중간에 그만둘 수도 없고. 그 남자의 기분을 맞춰주려면 내가
아픈 거 있죠? 그러고 나면 집에 가서도 하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
도 없어요. 얼마나 시달렸는지 집엘 가면 잠밖엔 안 와요. 하펄 그
럴 때, 남편이 눈치를 챘는지 어쩐지 또 치근덕거리면 빽 화부터 나
더라고요."
"그땐 의무 방어라도 해줘야지, 눈치를 채면 어쩔려고 그래요? 좋
든 싫든 후딱 끝내 버리고 얼른 곯아떨어지도록 해야지 자꾸 피하
면 결국엔 눈치를 챈다고요. 남자들에게도 예감이라는 게 있잖아
요.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라고요."
사십대의 여자가 제법 훈계조로 타일렀다.
'그야. 그렇게까진 안 하죠. 저엉 하고 싶어서 안달을 부려대면
서둘러서 끝을 내지요. 밑에서 몇번--
그건 문제가 안 돼요. 몇 분도 못 가면서 씨근덕거리는 걸 보면 가
소롭다는 생각부터 들어요. 어떨 땐. 오르가슴에 도착하지도 못했
는데 내려가면 한 대 때려주고 싶더라고요. 그러니까 마누라가 바
람을 피지 달리 피우겠어요? 남자들은 그걸 모르더라니까요."
삼십대의 여자는 손바닥을 파리채처럼 들었다가 내려 놓았다. 마
치 앞에 남편이 있는 것처럼.
그 진지한 표정과 손동작에 여자들이 실감을 하듯 까르르 웃어댔
다,
'남자들이란 원래가 조루예요. 가끔 특이한 남자가 있긴 있지만.
남자랑 여자는 서로 기분을 주고받는 서비스 차원인 것 같아요. 서
로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려는. 최선의 노력을 쏟아부으니까 만족하
는 거죠. 그리고 하는 시간도 넉넉한 것같이 느껴지는 거고. 실제로
하는 타임을 재보면 짧을 거예요. 밑에서 시달리면서 느끼는 시간
이 길 뿐이지."
그 말에 삼십대의 여자가 대뜸 말을 받고 나왔다.
"아니예요. 전, 그 남자가 얼마나 센지 모르겠어요. 한번 했다 하
면 뿌리까지 얼얼할 정도로 아픈걸요. 아주 녹초가 되다시피 해요.
그걸 하고 나면 잠에 곯아떨어질 정도로 피곤하던걸요. 낮에 들어
갔다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나오니까 시간이 꾀나 긴 셈이죠. 그
럼, 그 남자는 정말 센 건가요?
삼십대의 또 다른 여자가 물었다.
"아, 그야, 하고 나서 잠을 잔다며? 그러니까 시간이 길 수밖에.
남자란 거의 똑같아요. 한 오 분에서 십오 분쯤이나 될까? 오십보.
백보예요. 그동안에 얼마나 만족하는가가 중요한 거지요. 기분이
좋지 않을 땐, 오래했다고 해서 좋을 게 없잖아요?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뿐인 거 알죠? 남자도 역시 마찬가지예요. 기분이 좋지 않
을 때, 여자가 하고 싶어하면 재빨리 싸 버리는 게 바로 남자-들이에
요. 얼마나 이기적인지 몰라요."
'정말 그래요. 여자를 마치 티슈처럼 생각하질 않나, 필요하면 불
러냈다가 거추장스러우면 빨리 집으로 들어가라고 하고선 딴짓을
하기가 일쑤죠. 알면서도 참는 수밖엔 없지만, 아마 부부라면 그러
지 못할걸요. 어차피 불륜이니까 서로 눈감아주면서 만나는 거지만
갈수록 태산이었다. 주리는 그런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
점 기분이 언짢아졌다.
남자에 대한 혐오감뿐만 아니라 여자에 대한 혐오감도 일었다.
주리는 옆에 모로 누워 있는 소녀에게로 다가가서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녀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가 점점 경계심을 풀었
다.
"어쩌다가 그랬어? 놀러 갔다가?
주리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눈가에 눈물이 핑 도
는 것이었다.
주리는 아직 앳되기만 한 그녀의 눈가를 쓸어주었다, 그러자, 더
많은 눈물이 새어나왔다.
"울지 마. 이제부턴 그런 데 가지 않으면 되지. 너 혼자 왔어?
대학생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는 안 해줄 텐데? 어떻게 했어,"
주리의 말은, 아직 대학생인지라 보호자 없이는 수술도 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염두에 둔 물음이었다
'교회 목사님이 보호자라고 속여서 했어요. 집엔 알리지도 못해
요. 그랬다간 당장 쫓겨나거든요."
그러면서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울었다. 가는 손가
락 사이로 물기가 내비쳤다
주리는 그녀의 손을 걷어내고 자신이 들고 있던 손수건으로 눈물
을 닦아주었다.
'너 , 교회 다니는구나?
소녀는 조그맣게 대답을 했다. 주리는 그녀의 어깨를 껴안듯이
팔을 둘렀다 작은 가슴이 만져졌다.
한창 이성에 눈을 뜰 나이인 것 같았다, 브래지어를 한 것하며,
옷을 차려 입은 모습이 그랬다
요즘 인기 있는 그룹들처럼 헐렁하게 입은 셔츠와 힙합 바지를
내려다보며 주리는 쓸쓸해지는 기분이었다. 자신도 부산에서의 학
창시절엔 저랬으리라.
"집에 부모님들이 다 계시니"
'예."
"아버지 어머니, 다 계시고?
'예."
주리는 부모님이 계시냐는 질문에 덧붙여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
계시냐고 재차 물어봤다, 혹시라도 어느 한쪽이 없거나, 사이가 좋
지 않은 건 아닌지 싶어서 물어본 것이었다
그녀의 대답으로 봐선 자신처럼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진 않
았다. 어쩌면 질 나쁜 친구들에-쉽쓸려서 저질러진 문제인 것 같
았다.
"이제 나가면 교회에 열심히 다녀. 나쁜 친구들은 될 수 있으면
만나지 말고. 이 언니도 대학생이야. 그런데 길을 가다가 나쁜 사람
한테 봉변을 당해 이렇게 된 거야. 처음엔 죽고 싶었어. 이걸 경험
삼아 더 나은 설계를 하면 될 거야,"
주리의 말에 그녀는 손을 잡았다.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언니, 고마워요. 벌써부터 내 자신이 이렇게 돼버렸구나 하고 생
각하니 살맛이 안 났어요. 어디론가 도망쳐서 숨어 버리고 싶었어
요. 병원을 나서면 어디로 갈까, 하고 겁도 났었어요_ 갈 곳이 없거
든요. 어디로 가서 숭어서 돈을 벌 생각도 했어요."
소녀는 한숨을 쉬듯이 띄엄띄엄 말을 이어 나갔다.
"아냐.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한 거야. 아직 학생이니까 열심히 공
부해야지 돈은 나중에 벌어도 돼 아직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
냐. 이건 어디까지나 실수야, 사람은 누구에게나 한번의 실수는 있
게 마련이야. 알았니?
주리는 소녀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그러면서 자기도- *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어쩌면 아슬아슬한 곡예를 한 것처럼 위험스런 삶이었다. 소녀를
바라보는 주리의 마음은 그랬다.
어쩌면 자신의 과거. 아니 지금 현재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늑대들에게 살점을 뜯겨가며 피신해 들어온 것이 바로
여기 산부인과가 아니던가.
꽃잎이 망가지고, 남자들의 정욕의 대상으로 마구 할퀴어지면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자신 또한 누구의 씨앗인지도 모
를 임신을 통해 여자로선 평생 잊지 못할 첫 중절수술을 한 것이 아
닌가.
연하디 연한 자신의 국부를 도려내 버린 것처럼, 자신에게 묻어
있는 얼룩을 긁어내 버린 것이 그래도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처녀로서의 치욕을 한꺼번에 겪어 버린 것처럼 가
슴이 아팠다.
누구에겐가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자신의 정조를 바치고 싶어하는
것이 여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라면, 이렇게 허무하게 꽃잎을 다쳐
버린 것이 안타까을 뿐이었다.
요즘 같은 프리섹스 시대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에게 쫓겨
꽃잎을 짓뭉개 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존심이 허
락치 않았다.
그리고 모든 희망을 한번에 빼앗겨 버린 것처럼 허탈하기만 했
다. 꽃잎을 다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 속에 몹쓸 이물질이
들어와 며칠 동안 머물렀다는 것 자체가 끔찍스런 일이었다,
주길놈 나이 어린 소녀의 꽃잎을 생각했다. 아직 채 만개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여러 사내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하니 절로 가슴이 뜨
끔해졌다.
여덟 명이나 되는 남자들이 돌아가며 짓밟았을 것을 생각하니 끔
찍하기만 했다.
낭자들은 도대체 윌까. 마치 짐승처럼 아무데나 정액을 흘려대는
수쾌나 다름없지 않은가, 겉으로는 지성인인 척하지만. 내면으로는
갖은 음흥한 생카들을 품고 있는 것이 낭자들의 속성일 거라는 생
각이 들었다,
'여자를 정복하기 위해선 어떠한 일도, 체면치레도 마다하면서까
지 본능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
주리는 점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렇다면 여자들은 또 뭔가? 남자들의 그러한 본능을 알아차리
지 못하고 그것을 사랑쯤으로 착각하고 점점 진흙탕 속으로 빠져들
듯이 쾌락의 늪으로 깊숙이 빠져들어가는 게 아닐까.'
기브 엔드 테이크가 아닌 배설의 욕구만이 살아있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연약한 여자들이 겪어야 할 아픔은 너무도 크다고 생각되
어졌다.
좁은 방 안에 여러 명의 여자들이 회복을 기다리고 있으면서 벌
거벗은 채 누워 있다는 것이 한심스러웠다. 비록 가운을 걸치긴 했
지만 알몸이 다 드러난 몸을 내보이며 히히덕거리고 있는 저 여자
들은 이미 늙은 창녀에 불과했다.
아무런 죄책감도, 부끄러움도 없는 곳이었다. 오히려 자신의 무
용담이라도 늘어놓듯이 게걸스럽게 자신의 성을 탐욕하는 여자들은
바라보며 주리는 불쌍하다는 생각과 함께 구토가 일어날 것만 같았
다.
그럴수록 그녀는 소녀를 끌어안았다.
"어이구, 여기가 뭐 동성연애하는 덴 줄 아나봐. 너무 그렇게 꼭
껴안지 말아요."
여자들은 이제 실컷 이야기들을 나눴는지 남의 일에까지 신경을
썼다.
'너무 안돼서 그래요."
주리는 모로 누워 소녀를 껴안은 채, 대꾸했다
"어릴수록 정신을 차려야지. 아직 뭐가 뭔지도 모르는 요즘 젊은
애들이 더 심하다니까. 모텔 같은 데 들어가 보면 새파란 것들이 아
무런 죄의식도 없이 히히덕거리며 들락거리는 걸 본다니까. 껌을
짝짝 씹으면서 보란 듯이 드나드는 꼬락서니라니. 우린 개네들보다
한참 늙은이들이지. 개네들이야 피부가 싱싱하겠다, 쭉쭉 빠졌겠
다, 또 생기긴 미스코리아 뺨치게 잘생겼지. 함부로 냄비를 막 돌리
는 걸 보면 세상 말세야, 말세. 옆방에서 한참 무드를 잡다가 보면
젊은것들이 내지르는 소리에 우리 같은 것들은 완전히 기가 죽지.
남자들한테 괜히 쑥스럽다니까, 남자들이란 죄다 속물들이라서 옆
에서 내지르는 소리만 들어도 괜히 투정을 부리곤 하지. 어떤 땐,
그걸 하다가도 남자가 옆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괜히 울화통이 치민다니까. 괜히 그런 데까지 들어와서 여자의 자
존심 건드리는 심보가 얄미워 죽겠더라고."
'맞아요, 맞아. 같이 밥을 먹다가도 괜히 젊은것들이 초미니 스커
트를 입고 있는 걸 흘끔흘끔 훔쳐보는 남자가 제일 밉더라. 숟가락
으로 한 대 때려주고 싶죠? 다른 사람들은 꿈도 안 꾸는데 괸히 흘
끔거리며 그쪽을 쳐다보면 여자의 자존심을 완전히 깔아뭉개는 거
지 뭐 그렇다고 한번 할 때마다 진땀이 손바닥에 고이도록 진하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어떤 땐 올라갔다가 몇 번 헐떡거리다가 말면
서 남의 떡은 또 얼마나 밝히는지. 젊으면 뭘 해, 섹스맛을 알기나
해? 그저 붙었다가 후닥닥 끝내 버리면서 그게 요즘 신세대들의 섹
스 아니겠어요?
삼십대의 여자는 그 말을 하면서 호호, 웃었다
'말이야 맞죠. 여자는 자고로 삼십부터 그걸 안다고 하지 않아요.
우리야 하면 할수록 질이 나서 쫀득쫀득한 재미가 더 나죠. 남자들
은 그걸 모르는 것 같애. 그저 젊으면 단 줄 알고 설쳐대는 꼴이라
-. 거기다가 자기가 제일 세다고 허풍을 떨어대기는, 걸핏하면 정
럭제 찾으면서 보신탕이다, 오리탕이다, 사슴피를 먹으러 가자고
하지 않아요? 난 남자가 그런 걸 먹고 나서 한번 쥑여주는 줄 알고
은근히 기다렸다가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녜요. 내가 달아오르
기도 전에 혼자 해 버리고는 얼른 옷을 입고 나면 괜히 울화통이 터
져요. 쓸데없이 다리를 벌렸나 싶어서 아까운 생각마저 들 때가 있
더라고요."
또 다른 삼십대의 여자가 그 말을 하면서 정말 안타까운 듯이 이
맛살을 찌푸렸다. 작고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에 눈웃음을 치면서
그 말을 했을 때, 남자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근데 모텔에 들어가서 보면 비디오를 틀어주잖아요? 난 그걸
보면 괜히 싫은데. 남자들은 그걸 보려고 기를 쓰더라고요. 그리고
하면서도 꼭 그대로 따라서 하려고 하니. 양놈들하고는 그 근본부
터가 다른데 그걸 자꾸 따라하려고 하니 되겠어요.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엎어 놓고 뉘어 놓고. 나중엔 두 다리를 어깨에 걸쳐 놓고
서 하는데 난 그런 것보다는 정상위가 최고더라고요. 그래야 흥분
이 왔을 때, 서로 껴안을 수도 있잖아요."
여자들은 점점 점입가경이었다. 섹스를 하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튀어나왔다. 이제 여자들은 이불 하나를 중앙에 둔 채, 빙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람자들은 걸핏하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쥑여준다고 호언장담을
곧잘 하는데, 그 말만큼 싫은 게 없어요. 실제로 쥑이지도 못하면서
시작하기 전엔 꼭 그런 말을 해대잖아요. 괜히 헛김만 잔뜩 부풀려
놓고선 풍선처럼 픽, 바람이 빠져 버리니까 그땐 실망을 하면서도
다음번엔 안 그러겠지 하고 기다려진다니까요 다음번에도 역시 마
찬가지지만,,, ,"
사십대의 여자가 그 말을 하면서 실실 웃었다. 다른 여자들 역시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웃어댔다. 마치 남자의 생리를 러무 잘 아는
것처럼 .
"그런데 말예요. 요즘 남자들은 그걸 하다가도 괵괴 , 자주 죽더라
고요.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고 애쓰는 걸 보면 우습더라고요. 그거
안 하면 죽을 줄 아는 건지, 하여튼 남자들이란 그래요. 여자한테
그걸로 한 밑천 든든히 잡으려고 그러는 것인지. 손바닥이나 거시
기에 침을 퉤퉤, 뱉어가면서 시도하려는 모습들이 마치 어린 애들
같아요. 가슴을 애무하느라 고개를 처박고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한
번 내려다보세요. 얼마나 재밌는 줄 아세요? 자꾸 웃음이 터져나오
려고 그래서 억지로 참다가 보면 나중엔 소변이 마렵더라고요."
모두 다 그쪽으로는 일가견이 있는 듯했다. 서로 지지 않으려는
듯이 재밌는 얘기들을 꺼냈다.
이런 곳에서 음담패설을 나누는 것이 제격인 것처럼 생각되었는
지도 모른다.
여자들이란 조긍만 친숙해지면 비밀스런 얘기들이 스스럼 없이
오갔다.
"포르노 그거 아무것도 아녜요. 요즘 남자들이 더 밝힌다니까요.
애무하는 법도 더 복잡하고 다양해져서 여자가 까무러쳐야만 그제
서야 남자들이 좋아하는걸요. 어떤 날은 하루종일 애무만 하다가
하지도 못하고 죽어 버리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그런 경우는 왜 그
렇죠?
삼십대의 젊은 여자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사십대
의 여자가 냉큼 나섰다,
'그런 경우는, 그 남자가 힘이 달려서 마음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어서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고. 괜히 일으켜 세워 보려고 안간힘
을 써대다가 끝내 안 일어나니까 그만두는 경우겠지. 남자들이 얼
마나 이기적이라고요. 안 서는 것을 갖고 안간힘을 쓰다가 여자의
밑만 잔뜩 버려 놓고 혼자 퍼질러 자는 경우도 얼마나 많은데요. 나
중엔 어쩌는지 알아요? 여자보고 애무해 달라고 조르는 남자는 나
말이지 밥맛이 다 없다니까요. 그건 어디까지나 같이 애무해야지,
여자한테 그러는 인간은 순전히 이기주의자야."
삼십대의 또 다른 여자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을 했다
어써면 그들은 하루종일 그곳에 남아 있으라면 밤새도록이라도
그런 이야기들만 늘어놓을 여자들이었다
'그런데 난 조금 불감증이 있거든요. 남자가 그래요. 당신은 불감
증이라고. 내가 생각해 봐도 그런 것 같아요. 웬만큼 해서는 느끼질
못해요. 그러니까 남자들이 더욱 애타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럼, 전혀 못 느끼세요?
삼십대의 또 다른 여자가 안됐다는 듯이 물었다.
"아노. 전혀 못 느끼진 않는데, ,, ,, ,, 가끔씰 느껴요. 기분이 무척
좋을 때나, 분위기가 있는 데서 오래도록 머물다가 보면 은근히 그
럴 때는 있지만.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남편은 아예 내가
바람을 안 피을 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임신은 까딱하면 덜컥일 정
도로 잘 돼요. 그러니까 내가 미치죠."
삼십대의 여자는 비로소 자신의 약점을 털어놓은 듯이 다른 여자
들의 말을 기다렸다.
'그럼, 그런 건 자주 파트너를 바꿔가며 해보는 수밖엔 없어요.
혹시 그러다가 불감증이 치료될지 누가 알겠어요? 그거 평생 고생
이에요."
그 말에 여자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여자는 다 남자하기 나름이에요. 남자의 손끝에 따라 예민한 여
자가 되기도 하고, 불감증이 되기도 하는 거라고요. 그럼. 댁은 남
편한테 문제가 있는 거예요. 안 그래요?
삼십대의 여자가 또 다른 삼십대의 여자한태 묻는 말이었다,
더 재미있는 말들이 쏟아져나와 주기를 바라는 듯이 묻는 질문이
었다.
"글쎄요. 전 결혼한 그날부터 지긍까지 남편한테선 한번도 못 느
꼈거든요. 그저 아이만 낳고 사는 일에만 신경을 썼지. 그러다가 다
른 남자를 만나고부터 가끙 한번씩은 그걸 느껴요. 소변이 마려운
것처렁 오줌줄기가 땡기거나, 녹아내리는 거 같은, .. .,., 그러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뚝 멈춰요, 어떤 땐, 마냥 아프기만 하다가
그게 반복이에요. 이런 경우도 치료할 수 있어요?
여자가 다시 진지하게 물었다.
'람편이 조룬가 보다. 남편하고 그거 할 때, 얼마나 오래해요?
사십대의 여자가 마치 의사인 양 물어왔다,
"빨라요. 넣었다 하면 금방 끝나요. 신혼 초부터 그랬는걸요. 그
래서 그런가"
삼십대의 여자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맞아요. 그러니까 미처 느낄 새도 없이 끝났잖아요. 그게 오래되
니까 불감증이 온 거라고요. 그럴 땐, 람자가 오래 애무를 해줘야
하는데 어때요-애무는 오래 안 해요? 남편이?"
'검전도 나한테 미안하니까 그러는 것 같지 않아요. 오래 달구어
놓았다가 나중에 괜히 미안해질까봐 그러는지 오래 애무를 안 해
요. 나도 죽 그렇게만 생각했어요. 그게 잘못된 건가.... . .,"
그런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이불을 사이에 두고 빙 둘러앉아 있으니까"안성
맞춤이었다.
마취가 깬 지도 벌써 한참이나 지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새
로운 얼굴이 들어와 이불 속으로 발을 묻었다. 처음엔 이야기를 듣
느라 귀를 종긋거리다가 어느새 진지한 이야기 틈바구니에 끼어들
곤 했다.
주리는 회복실을 나와 대학생 소녀랑 같이 근처 분식집으로 들어
갔다.
마취가 깨면서 공복감을 느꼈다. 그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기
도 했다.
대학생 소녀에게 뭔가 먹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조촐한 분식집에 앉아 둘은 서로를 바라봤다. 이제 어느 정도 친
근감이 든 탓인지 대학생은 주리에게 있어 마치 동생처럼 굴었다
"어떠니? 많이 아프지?
'예."
그러면서 그녀는 인상을 썼다. 자리를 고쳐 앉는 것으로 아직도
아래쪽이 아프다는 표시를 냈다.
'그럴 거야. 나도 많이 아픈데, ,, 원래 이런 수술을 하고 나면
미역국을 먹어야 하는 거라는데 그럴 수는 없고, 여기서 분식이나
먹자. 집엘 가면 따뜻한 방에 누워 있어야 돼. 그래야 나중에 몸고
생을 안 찬다더라, 아이를 낳은 거나 다름없다는 거 너, 알지?
'예."
아이를 낳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에 쑥스러움을 느끼는 모양이
었다.
'남자 친구들도 만나지 마. 그런 친구들은 친구가 아냐."
그 말에 대학생은 얼른 고개를 들었다.
'남자 친구들 땜에 그런 거 아니예요."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고 늦게 집으로 돌아가다가 여
컨한테 붙잡혀서 그랬어요. 그 중엔 내가 아는 애도 한 명 있었어
요.
주리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대학생인 그녀가 노래방에서 아르
바이트를 했다는 사실을,
"그럼, 개네들이 널 일부러 그랬겠구나?
'네, 그랬던 것 같아요. 내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
을 지켰다가 나를 끌고 간 거죠. ,,,,,,집 근처 야산으로 저를 데려
갔어요."
이제 대학생인 그녀는 스스럼 없이 말을 꺼냈다. 부끄러워하거나
어색함은 가신 듯했다.
'노래방에도 너희들 같은 애들이 있니-
주리의 말에 그녀는 괴들거리며 웃었다. 천진난만한 웃음기가 그
대로 홀러나왔다,
마치 소꿉장난질을 치다가 그만 애를 밴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였다.
-네. 학교 마치고 노래방에 나와서 아르바이트 하는 애들이 여럿
있어요. 손님들은 우리보고 영계 중에 영계라고 불러요. 팁도 많이
줘요.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더 많은 팁이 나와요. 인기도 최고고
요. 그만큼 노래도 잘 불러야 돼요."
=..
주리는 그 말을 듣자, 턱 숨이 막혔다. 괜히 이상한 말을 들었을
때처럼 갑자기 목이 말라왔다.
앞에 놓인 물컵을 들어 목을 축였다
'너, 뭐 먹을래?"
'아무거나요. 다 잘 먹어요."
그녀는 싱그럽게 웃었다. 웃느라 가지런한 횐 이빨이 다 드러났
아작 아무것도 모를 나이에 자궁을 긁어낸 엄청난 일을 당하고도
저런 천진한 웃음이 나을 수 있다니.
그 당시의 자신과 비교해 보았지만 그런 일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요즘 엑스세대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몸 어딘가에 몹쓸 것
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갔고, 몸이 짓이겨질 대로 짓이겨졌는데
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저 배짱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순결이란 요즘 젊은 애들 말마따나 거추장스런 의식에 지나지 않
는 것일까. 언제고 한번은 떨궈 버려야 될 성질의 그런 것일까. 아
예 이참에 잘 떨궈 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일까.
더 심하게 말하자면. 어린 나이의 그녀가 어른들의 성에 일찍 눈
을 뜨게 된 것에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 .
그녀를 보면서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 수그러들었다.
너무 천진한 모습들을 보면서 주리는 너무 몰라서 저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마저 들었다.
엄청난 일을 당하고도 저렇게 순진하게 나오는 그녀를 아파트로
데려가 일주일간만이라도 몸조리라도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같은 동병상련을 겪은 여자의 운명 같은 나무뿌리가 그녀
에게로 뻗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주문한 떡볶이와 유부국수, 순대가 나왔다. 대학생인 그녀가 나
무 젓가락을 주리의 앞에 놓아 주었다. 주리는 그걸 보고는 피식 웃
어주었다
'너, 이런 건 잘 하는구나. 붙임성도 많고."
'네, 학교에서도 그래요. 학교 친구들이 내 성격이 명랑하고 쾌활
하다고 그랬어요."
그녀는 뽀얀 이를 드러내며 하얗게 웃었다,
주리는 아무리 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 귀염성 있는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남자 애들이 제법 따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뭐하시니"
드디어 주리는 그녀의 가정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났다
', 아버진 고급공무원이세요. 국장인걸요. 연말 때마다 우리집
엔 공무원 아저씨들이 선물 보따리를 들고 막 찾아와요. 전 그때 집
에 있다가 그 사람들한테 인사라도 하면 용돈에 쓰라고 얼마나 주
는지 아세요"
'얼마나 주는데"
주리는 웃으면서 물었다.
"어떤 땐 5만 원도 주고. 또 어떤 분들은 10만 원짜리 수표도 줘
요. 다 우리 아빠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거죠 뭐."
주리는 약간 놀랐다. 처음엔 얘가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는데 나
중 얘기를 듣고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 집안의 딸이. 그것도 대학생밖에 되지 않은 딸이 아르바이
트를 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이상했다
"엄마나 아버지는 네가 아르바이트를 하는지 알고 있니-
"전혀 몰라요. 학원에 간다고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거예요. 아
르바이트를 하면 재밌거든요. 공부는 취미가 없어요. 내가 벌어서
콘서트도 갈 수 있고, 친구들이랑 같이 영화구경도 가요. 저번엔 동
해안으로 겨을 여행도 갔다가 왔어요."
그녀는 마치 기성세대가 하는 것을 따라하는 것이 어른스러움인
것처럼 재잘거렸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리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그걸 보고는 뚝, 입을 다물었다.
"요즘 어른들은 우리들의 세계를 너무 몰라요.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전혀 모르고서 야단만 치려고 그래요. 전 그
게 싫거든요."
"이름이 뭐니?
주리는 그제서야 그녀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혜진이에요. 나혜진. 제 이름. 예쁘죠?
혜진은 입에 잔뜩 넣은 채, 우물거리며 말했다
"이름도 예쁘고, 얼굴도 예뻐. 그런데 공부는 싫어했다니 이상하
子나. 공부만 잘 하면 나중에 대학가서 메이퀸도 될 수 있겠는데."
"전 대학 같은 건 관심도 없어요. 대학을 나오면 회사에나 들어가
서 틀에 얽매인 생활을 해야 되잖아요. 그런 게 싫거든요. 내가 하
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요."
"어떤 일?
주리가 넌지시 물어봤다.
''아직은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응,,, , 영화감독 같은 게 맘에 들어요.
여자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메가폰을 잡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멋
있어요."
혜진은 챙이 있는 로자를 푹, 눌러쓰듯이 손으로 머리 위를 누르
면서 종알거렸다.
말을 할 때마다 볼에 작은 우물이 패이는 것 같은 앙징스러움이
드러났다.
'나중에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해도 돼. 그런 일은. 그리고 그런
일을 하려면 대학을 가서 많이 배워야지, 마음만 갖고서는 안 돼.
너처럼 그런 생각만 갖고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난 벌써 영화감
독이 됐겠지 그쪽으로 전공을 해서 배워야지 할 수 있는 거야."
주리는 차근차근 설명하듯이 말을 했다.
"언닌, 전공이 뭐예요"
"지질학과."
"피이. 여자가 지질학과를 다녀서 뭘 해요 땅 연구하는 거 아녜
요?"
"그래, 맞아. 나도 대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원
하지도 않던 지질학과밖에 못 들어갔어. 조금만 더 열심히 했더라
면 영문학과나 법학과를 갔을지도 모르지. 너도 공부를 열심히 해
서 원하는 과에 들어가 그게 성공하는 거야."
혜진이는 주리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앉고 고개를 푹 숙이고는 먹
는 데만 열중이었다,
"노래방에서는 팁을 왜 주는 거니-남자들이
주리의 말에 혜진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야. 같이 놀아주니까 고맙다고 주는 거죠. 탬버린을 치며 같이
놀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해요. 또 노래를 한곡 불러주면 만 원짜
리 한장 정도는 줘요. 돈을 주는 것도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일부
러 그러는 것처럼 바지나 스커트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어 주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습다고요. 간지럽기도 하고요."
혜진은 그런 말까지 스스럼 없이 했다,
"그럼 , 손을 집어넣는다는 말야'
주리는 잠시 놀라는 시늉을 했다. 국수를 빨아들이다가 뚝 잘라
냈다. 그러고는 씹을 생각은 하지 않고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네. 그런 데서는 원래 그래요. 팁을 손으로 받지 않고 그런 식으
로 받는걸요. 손님들도 그렇게 하는 걸 좋아해요. 노래만 잘 하면
팁을 많이 받을 수 있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 그런 데 오는 사람들은 모두 어른들이잖
니? 같은 또래의 애들이 와서 팁을 줄 리는 없고,,,,,, "
'그렇죠. 전부 어른들이에요. 그러니까 만 원씩이나 팁을 주죠.
우리 또래의 애들은 그저 놀기나 하다가 가는 거지, 팁 같은 건 아
예 없어요. 우리도 그런 덴 안 들어가요."
노래방이라는 데가 그런 델 줄은 몰랐다. 그저 노래만 부르고. 단
지 노는 덴 줄로만 알았었다 그런데 혜진의 말을 듣고 보니 노래방
도 많이 타락한 감도 없지 않았다.
주리가 혜진이 앞에 순대 접시를 놔주며,
"어른들이 치근덕거리진 않니? 그냥 공짜로 돈을 줄 리는 없을 테
고----
'아니에요. 팁을 준다면서 슬쩍 손을 집어넣고서는 자꾸 만지려고
그래요. 간혹 스치듯이 만져질 때도 있긴 있어요. 어떤 남자는 내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손을 쑥 집어넣는다는 게 팬티 안으로 그만
손이 들어가서 깜짝 놀랐을 때도 있는걸요. 남자들이 얼마나 짓궂
다고요."
:.. -'
주리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런 일까지 일어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더구나 어린 여학생들한테 그런다니
'간혹 좀 심한 애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단골손님을 잡으려고
아예 짧은 치마를 입고 나와요. 그래서 노래를 시키면 노래를 부르
면서 소파에 쪼그리고 앉아 속팬티를 다 보여주는걸요 그러면 자
꾸 단골이 많아져요. 난 그러진 않는데-----
"그런 애도 있어-학생이-
-네. 남자들이 그런 걸 좋아하나 봐요. 가슴 한 번 만지는 데 만
원이구요, 치마나 바지 속으로손을 한 번 집어넣는 데 만 원이에
요. 그리고 기분 좋은 아저씨는 이만 원도 막 줘요. 하룻밤에 20만
원도 벌어가는 애도 있어요. 그런 애들은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돈
에 환장한 애들이에요. 손님이 손을 넣으려고 하면 몸을 비비 꼬면
서 얼마나 튕기는데요. 그러면서 결국 팁을 받아내죠, 어떤 아저씨
들은 귀에다 대고 뭐라는 줄 아세요?
'뭐라고 하는데?"
주리는 이제 아예 먹을 생각을 잊어버렸다,
-팁을 듬뿍 줄 테니 같이 나가자고도 그래요. 그냥 같이 가서 하
룻밤 놀자고요."
"어디로?
-모르겠어요. 아마 호텔이나 모텔이겠죠 뭐. 간혹 따라나서는 애
들도 가끔 있긴 해요. 그런 애들 말을 들어보면 한번 따라갔는데
20만 원을 받았다는 말도 있었어요. 애들은 그걸 봉이라고 부르죠.
자꾸 오는 손님들 중엔 그런 손님이 많아요. 처음엔 팬티 속으로 팁
을 많이 넣어주다가 나중엔 같이 나가자고 그러죠. 그러면 안 따라
나갈 수도 없어요. 그런 손님들은 노래방에서도 무시할 수가 없거
든요. 단골이니까요. 그래서 한번 따라나가면 20만 원은 벌어요."
혜진의 말을 듣고 보면 노래방이라는 데가 완전히 탈선의 온상인
것처럼 여겨졌다. 나이 어린 여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나오는 것을
미끼 삼아 어른들의 성적인 노리개로 전락한 느낌을 떨굴 수가 없
었다.
"그런 덴 좀 무섭구나. 어떻게 그런 델 가게 됐니?
주리는 무척 안쓰러운 눈빛을 던졌다,
혜진이 오히려 그러한 주리의 눈빛을 보고는 의아한 눈빛을 던졌
다.
"그게 뭐가 무서워요. 같이 노는 건데요. 전 팁만 받았지. 같이
나가진 않아요. 짧은 치마도 안 입었고요. 괜히 어른들한테 팬티는
보이기 싫더라고요. 손종이야 들어오는 게 어때요-그냥 한번 들어
왔다가 팁만 넣어주고는 곧바로 나가는데요. 어떤 아저씨는 손이
들어와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더라고요. 그런 아저씨들도 가끔 있어
요."
"혼자 오는 남자도 있겠네, 그렁?
'네, 그런 때는 단 둘이 앉아서 노래를 불러요. 조용하고 더 좋아
요, 팁도 더 많이 주거든요, 그런 아저씨들은,
-,....-'
"그런 아저씨들은 우리 같은 어린 애들을 좋아하는 모양이에요.
어깨동무를 하고서 노래를 부르다가 점점 가까워지면 팁을 주면서
팬티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어요 그러고는 계속 그러고 있어요. 나
중에 나갈 때, 다시 팁을 듬뿍 집어주고 나가요. 어떤 애들은 단 둘
이 그러고 있으면서 그 안에서도 관계를 했다고도 들었어요. 그럴
땐, 십만 원을 받는데요. 참 이상한 애들이죠?
주리는 이제 어이가 없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더이상 듣
다간 머리가 돌아 버릴 것 같았다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졌다.
주리가 벌레 씹은 표정을 짓고 있자,
"왜 그러세요-노래방엘 안 가봤어요? 그런 델
"아니,,,,,, "
주리는 머리까지 흔들었다 강한 부정의 머리짓이었다.
주리는 억지로 무언가를 집어 입에 넣으려다 말고 도로 내려놓았
다. 속에서 받지 않는 것이었다.
주리의 몸을 짓밟고 지나갔던 남자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
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몽 속에서 자꾸만 흘러나오던 이상한 액체. 그것은 죄악
의 씨앗이 분명할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주러는 그것의 잉태를 막
기 위해 연하디 연한 살을 후벼파는 듯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지 않
았던가.
주리도 노래방엔 몇 번 가보았다, 과 친구들이랑 같이 들어가 맥
주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좁은 노래방 안에서
그런 어처구니없는, 숭악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닭살이 오르는 듯했다.
추잡한 짓을 한 더러운 소파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을 자신
을 생각하니 엉덩이가 닿은 부분에서 어쩌면 남이 흘린 정액이 묻
어났을 것만 같은 불순한 상상력이 들었다.
어둡고 비좁은 실내에서 비비적거리며 거의 알몸인 채로 버등거
렸다면 무언가 끈적한 것이 흘러 묻어 있지 않았을 것이라는 보장
이 없었다.
이미 자신은 그때부터 미리 강간을 당할 조짐이 어딘가에 묻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다시 께름칙해졌다
어쩌면 그때부터 자신에게 그런 나쁜 악운이 끼어들지 않았겠는
가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주리는 앞에 앉은 혜진의 티없이 맑은 얼굴을 들여다보며 여자란
얼굴이 예쁠수록 그런 악운이 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러세요. 언니?
혜진이 묻는다.
떡볶이를 먹느라 입가에 고추장을 묻힌 그녀의 얼굴은 누가 봐도
그런 일을 겪었을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으응. 그냥 생각 좀 하고 있었어. 맛있니?
'네. 배가 고팠는걸요, 아침도 못 먹었잖아요. 근데 아까 얘기한
것 땜에 그러세요?
"아니 . "
"고보다 더한 일들도 있어요. 처음엔 나도 어리등절했지만 차츰
무감각해지더라고요. 으레 그렇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모든 게 다
편해요. 여대학생만 돼도 거의 대부분이 성관계를 갔는걸요 -
. 어른들은 그걸 몰라요, 하지만 큰 문제는 없어요. 다 알아서 하
니 까요."
다 알아서 했다는 혜진의 말이 가슴에 걸렸다. 어린 학생들이 벌
써 자신의 일을 알아서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성이 있다고 생각되
었다.
그저 부모들이 모르면 그만이라는 무서운 생각. 그런 생각을 갖
고 있는 혜진이 가엾어졌다
'그건 그렇지 않을 거야. 너희들은 아직 어리잖니. 아직 어른이
아니야. 어른이 되어서도 어려운 문젤 너희들은 간단히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주리의 말에 혜진은 먹던 것을 잠시 멈추고 뽀로통해진다 그걸
보는 주리의 마음이 다시 아파왔다.
'듣기 거북한 말은 싫어하는 요즘 젊은 세대들의 의식은 과연 어
떤 빛깔일까.'
주리는 점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던린큰점에서 일하는 애들도 있어요. 개들은 더해요. 같이 술을
마시기도 하고, 춤을 추면서 손님들의 기분을 맞춰줘야 하거든요
디제이도 보면서 춤도 추려면 우리 같은 초자들은 아직 멀었어요.
수입도 그쪽이 훨씬 더 낫고요."
'단란주점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하니? 거긴 술집인데-
주리도 몇 번 가본 적이 있었다. 맥주와 양주, 고급 안주를 내놓
는 그곳은 말만 단란주점이었지, 옛날의 룸살롱이나 마찬가지였다
룸살롱이 된서리를 맞고 나자 변형해서 등잘한 것이 바로 단란주
점이었다.
웬만한 월급쟁이는 그런 데 가서 마음껏 술을 마실 수가 없는 곳
이다. 노래방보다 훨씬 더 넓고 고급스런 소파, 그리고 예쁘고 어린
여자들이 들끓는 곳이이기도 했다.
그때는 주리도 남자 친구들이랑 같이 갔었기에 그들이 필요치 않
았겠지만, 남자들만 들어갔었다면 흥을 돋궈주는 그들에게 한 사람
당 최소한 3만 원씩의 팁은 줘야 할 거라는 말을 얼핏 들은 기억이
났다,
강남 쪽에서는 팁의 기본미 10만 원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
던 적도 있었다
술값과 팁을 계산하면 하룻밤에 100만 원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
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하룻밤 같이 자겠다고 했다면 따로 30만
원은 집어줘야 하는 것이 단란주점의 생리이기도 했다,
요즘같이 돈이 돈 같지 않는 고물가 시대의 화대 또한 일정한 가
격이 있지 않았다, 돈이 철저하게 지배하는 세상이 바로 밤의 세계
였고, 술집 세상의 룰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여자란 꼭 필요한 존재
일 수 있었다.
'단란주점에서는요, 젊을수록 더욱 값나가요. 그럴수록 장사도
잘 되고, 팁도 두둑하고요. 그리고 왜 돈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곳이라서 애들은 거길 들어가는 걸 최고로 좋아해요. 그런 데 나가
는 애들은 옷 입는 것부터가 달라요. 유명 메이커 옷을 사 입고, 화
장품도 제일 고급으로만 쓰는걸요 ~~ ~ ~
"대학생이?
주리는 눈이 휘등그래졌다.
"그럼요. 대학생이라고 해서 란제리, 브래지어를 안 해요? 팬티도
외제 고급으로 사 입어야 따라갔을 때, 손님이 그걸 알아보고 팁을
줘도 좀더 두둑히 준다는 거예요. 아무렇게나 국산 시시한 걸 입고
있으면 대충 기본적인 팁만 줄 것도 화려한 외제를 입고 있으면 한
장쯤은 더 올려서 준다는 거예요."
주리는 대학생밖에 되지 않은 혜진의 말을 들으면서 마치 외국에
나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 어느 외국 비행 소녀
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귀가 의심스러워졌다.
"개들은 아예 처음부터 피임약을 먹어요. 그럴 정도예요. 학교에
가면 그런 애들이 자랑삼아 피임약을 내보이기도 하는걸요. 먹으면
속이 메스껍다고 하면서 부지런히 먹어요. 차라리 그런 애들이 더
잘 안 걸려요. 피임약을 먹으니까,"
"그 정도니?
주리는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렇게만 물었다
'그럼요. 그런 애들은 부지런히 돈을 모아서 예쁘게 성형수술을
하겠다고 그래요. 성형수술을 했다고 하면 집에서 들어주기나 하겠
어요? 그런 식으로 돈을 모아서 성형수술도 하고, 연기학원에 등록
을 해서 스타가 될 거라는 꿈도 가지고 있어요. 제 스스로 벌어서
하는데 누가 뭐라고 그러겠어요?"
혜진은 탁자 위에 턱을 괸 채, 주리를 빤히 쳐다봤다.
눈빛에 아무런 두려움이나 의혹도 없이 거침없이 말을 하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주리는 괸히 뒤쳐지는 듯한 열등감이 느껴졌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는 무한정하다. 그런 식으로까지 아름다움
을 추구하는 것은 일종의 죄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분노보다는 측
은함이 먼저 일어났다.
'너도 그러고 싶니? 개들처럼?
"아노. 전 그렇게까진 하고 싶지 않아요. 이제 혼났으니까 노래방
같은 데도 나갈 마음이 없어졌어요. 전요, 그런 데 나가면 인기가
꾀 있었거든요. 손님들이 팁을 많이 줘요. 몇 번 만지기만 하는데도
그래요. 처음엔 쑥스러웠지만 다른 애들도 그렇게 하는 걸 보곤 그
다음부턴 별로였어요. 관계만 안 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럼. 그 전에도 너, 혹시,,,,,, 누구랑 관계를 한 적이 있니?
주리는 무심코 그 말을 해버렸다.
"왜요?'
혜진이 생글거리며 웃었다
그 표정으로 봐선 있을 것도 같았다. 그렇지만 주리는 혹시나. 하
는 생각으로 기다리기만 했다
혜진이 생글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경험은 있어요. 좋아하는 남자 친구랑 같이요. 그 친구네 집에서
이상한 시디롬을 보다가 그랬어요."
혜진은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그 말을 했다.
"시디롬-어떤 건데"
'그런 거 있잖아요. 외국 남자와 여자가 나와서 벌거벗고 하는 거
똑같아요. 화질도 선명하고 생생한 거였어요. 요즘 대학생
쯤이면 그런 거 한두 개는 다 갖고 있어요 우리 여자 애들도 그런
거 학교에서 돌려가며 보는걸요. 선생님한테 들켜도 무슨 시디롬인
지 모르잖아요-컴퓨터에 넣어서 보지 않고선......."
"그래?''
주리는 훅, 숨을 들이마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숨을 죽이며 혜진
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혜진이 그 정도까지 이야기를 하자, 갑자기 울화통이 치밀면서
복잡한 마음이 되었다.
그녀에게 어떠한 말을 해줘도 곧이 듣지 않을 것만 같은 답답함
이 스며들었다.
'그런 거 많이 봤니?"
'네. 학교에 가면 맨날 새로운 거 갖고 오는 애가 있어요. 아예
복사해서 복사비까지 받는걸요. 그러면 아이들은 그걸 사서 집에
가서 봐요. 나도 그 애네 집엘 갔다가 그걸 보고서 그 애가 하는대
로 가만히 있었어요. 시디롬에 나오는 그대로 하더라고요. 기분이
좋았어요. 그러고 나선 자주 그 집엘 놀러갔어요 그렇지만 그 앤
공부도 못하는 건 아니었어요. 반에서 10등 안에 들거든요."
"시디롬은 내 책상 서랍에 넣어놔도 엄마 아빠가 모르세요. 무슨
내용이 들었는지 전혀 몰라요. 우리 아빠나 엄만 진짜 컴맹이거든
요. "
그 말을 하면서 혜진은 웃었다,
마치 대단한 보물을 숨겨둔 것처럼 의기양양해 했다. 그리고 자
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비밀인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인 깃
처럼 여기는 모양이었다.
'너희들, 그러다가 무슨 큰일이라도 나면 어쩔려고 그러니?
주리의 입에선 기껏해야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주리는 그 말을 하면서 혹시라도 혜진이 뜨끔해지기를 바랐으나
그렇지 않았다.
'뭐가요-우리 일은 우리가 다 알아서 하니깐요. 오늘처럼 수술을
받아야 하는 일만 아니고서는 우리도 다 알아서 할 수 있어요. 그리
고 저엉 모르는 것이 있으면 다른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금방 가르
쳐 줘요. 개네들은 이미 많은 경험이 있어서 내가 물으면 다 대답해
주거든요."
혜진의 웃는 모습을 보며 주리는 쓰디쓴 입맛을 다셨다
"그래, 앞으론 어떡할 거니?"
다소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냥 학교에만 다닐 거예요. 아르바이트는 이제 안 할 생각이고

"친구들이 나가자고 하면 어떻게 하지?
"안 나가겠다고 말을 하죠 뭐. 큰 보탬도 안 되고 하니까,,,,,,
차라리 집에서 타서 쓰는 게 낫겠어요. 일주일에 5만 원밖엔 안 주
지 만요."
5만 원이 적은 돈이니?
주리는 다소 한심한 듯한 생각이 들어 물어봤다.
"적죠. 일주일에 그건데. 하루에 7천 원밖에 안 돼요. 그거 가지
고 어떻게 써요-친구들이랑 커피숍엘 가고, 점심을 몇 번 사먹으면
빈털터리인걸요 그러니까 그런 데 나가서 용돈을 만들어 쓰는 거

'대학생인 나도 그렇게 많이는 못 쓰는데? 어디 그렇게 쓸 데가
많니? 아직 대학생인데,,,,,,,"
'담배도 사 피우고 하니까 하루에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천
원이잖아요. 그리고 친구들이랑 모이면 사먹어야 되고, 하여튼 그
돈으론 조금 모자라요."
"이제 집으로 갈 거지"
'예."
"이만 일어날까-혹시 집에 있기가 갑갑하면 언니한테 놀러올래?
전화번호 적어줄까?"
'네, 그러세요,"
혜진이 밝게 웃어보였다.
주리는 핸드백에서 종이를 꺼내 전화번호를 적어 건네주었다, 그
러고는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산부인과에서 그-멀리 떨어
지지 않은 곳이었다.
벌써 하루 해가 다 기운 것 같았다. 오후의 햇資이 많이 누그러든
느낌이었다,
"어디로 가지7난 이쪽으로 가는데,,,,,, "
주리가 손끝으로 오른쪽 방향을 가리켰다,
-
"전 저쪽으로 가서 버스를 타야 돼요, 그럼 언니 여기서 우리 헤
어져요. 고마웠어요,"
혜진은 긴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인사를 했다.
"응, 집에 가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어. 부모님껜 그냥
아프다고만 말해, 알았지-
'네-"
혜진이 다시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저쪽으로 나풀거리며 달아났

횐 운동화가 햇빛을 받아 새하얗게 빛났다.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혜진을 바라보며 주리는 쓸쓸해졌다, 차라
리 아파트로 데려가서 몸조리라도 해줘서 돌려보내고도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어차피 그러자면 며칠 동안은 자신의 아파트에
서 머물러야 할 것인데 혜진이네 집에서 걱정할까봐 그러지도 못했

걸으니까 아릿한 통증이 왔다. 생살을 도려낸 듯한 아릿함 때문
에 주리는 걷기가 불편했다. 그리고 아래쪽으로 무언가 흘러내릴
것만 같은 묵직함이 느껴졌다
빨리 아파트로 돌아가서 드러눕고 싶었다. 눕기 전에 얼른 샤워
라도 하고 싶었지만 의사의 말대로라면 샤워도 못할 형편이었다,
하긴, 애를 낳은 거나 마찬가지라니까 물이 스며들거나 자극성이
있는 비눗물이 묻는 것조차도 안 될 일이었다.
여자의 몸이란 이렇듯 세밀해서 조그만 다치고도 큰병일 수 있었
다 남녀간의 성관계에서도 그렇다, 여자들만이 겪어야 하는 어려
움이 더 많다. 주리는 여자와 남자의 차이에서 많은 불공평함을 느
껴-야만 했다.
돌아오다가 아파트의 상가에 들러 건미역을 한 줄 샀다. 그리고
미역국에 넣을 소고기 한 근과, 대파 한 묶음을 사고 집에 누워 있
을 동안 심심치 않게 주전부리 할 만한 과자 부스러기 몇 봉지를 사
서 넣었다.
그리고 혹시 있을지 모를 출혈을 의식해서 패드를 몇 개 사서 넣
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것만 해도 시장 바구니가 하나 가득이었다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다가 만난 경비 아저씨가 아는 체를 했지만
주리는 얼른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엘리베이터 입구 쪽으로 숨듯이
달려갔다. 갑자기 창녀가 되어 돌아온 것처럼 창피하고 부끄러워졌
다.
아파트에 들어갈 때까지 아무도 만나지 않고 무사히 들어갔으면
했다. 그런데 입구에서, 또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지는 사람들로
인해 주리는 점점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빨리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는 이불을 푹 뒤집
어썼으면 싶었다. 그리고 불도 켜지 않은 채, 몇날 며칠을 물도 마
시지 않고 계속 잠만 잤으면 싶은 생각이었다.
전화 코드를 뽑아 버리고,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은 채로 그렇
게 시간이 부지불식간에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그녀는 아파트 통로를 걸으면서 자신의 손에
묵직하게 들려져 있는 봉투들이 부질없는 것들처럼 보여졌다. 마치
먹고 살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먹이를 빌려오는 듯한 비감함이 느
껴지고 있었다.
그녀는 아파트 입구 문에 키를 넣어 비틀고는 들어서자마자. 현
관에다 들고 온 봉지들을 내팽개쳤다. 구두를 벗는 등 마는 등하고
서는 얼른 방 안으로 들어가 옷을 홀훌 벗어 버리고는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당겼다. 그때서야 눈물이 주르
루 흘러내렸다.
어둠에 파묻혀 얼마나 울었는지 ,
그녀는 희미하게 잦아드는 잠결을 느끼면서도 끝내 잠이 들진 못
했다. 모처럼만에 깊은 잠에라도 빠져야겠다고 야무지게 마음먹었
던 탓인지 더욱 잠이 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온통 허무뿐이었다. 작은 불빛이라도
따스하게 비춰줬으면 하는 막연한 바람 같은 게 있었지만 지금의
그녀에겐 그럴 만한 여유의 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음이 온
통 얼음장처럼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제도라는 것에도 화가 치밀었다. 치안 유지, 치안이
라는 말만 믿고서 여태껏 살았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고, 그런
허무맹랑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 것을 믿고서 밤길의 공원으로 들어
갔던 자신이 너무 어리석었다고 생각됐다.
그리고 아까 혜진의 말을 들으면서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허가해
준 업소에서 어떻게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가 있는 것인지, 만일
허가를 해줬다면 철저하게 단속해서 미성년자들이 그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
득 채우고 있었다.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노래방에서 그러한 일들이 일어난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도처에 널려 있는 독소를 피해가며 살아가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
인가.
주리는 끝내 잠들지 못했다. 오후 내내 그러고만 있다가 밤중에
서야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배도 고팠지만 이불 속
에서의 답답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베란다로 나가 바깥을 내다보았지만 벌써 어둠이 깊은 밤이었다.
차라리 좀더 일찍 일어났더라면 어디든 산책이라도 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만 남았다,
바깥은 10시쯤 되었을까. 아파트 밑의 주차선이 그어진 데로 차
들이 슬금슬금 들어와 박히는 걸로 봐선 대략 10시쯤 되었을 것이
란 생각이 들었다
캄캄한 밤하늘엔 오늘도 어김없이 희뿌연 별들이 찾아와 우중충
한 밤하늘에 떠 있는 게 보였다.
'이 서울엔 회색빛과 우중충함만 남아 있는 것 같아.'
주리는 무심코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젠 밤중에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 무서웠다. 지나다니는 사람들
의 겉모습은 온화해 보이지만 그 속에 숨어 있을 불량한 양심들이
언제 튀어나올지 몰라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요즘 사람들은 완전히 사이코다. 머리가 돌아 버려도 이만저만
돈 게 아니라,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서 돌아 버리는 데엔 현대
문명병이 한몫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길을 걷고 있는데 무심코 다가와 귓전에 바싹 입을 대고
는 속삭이는 남자가 있었다. 아마도 남대문 시장 근처였으리라.
그런데 그 남자는 사십대 후반의 멀정한 사내로 무언가를 속삭였
는데 잘 알아듣지 못해서 주리는 그 자리에 서서 무슨 말을 했느냐
고 되뭍었던 적이 있었다. 혹시나 자신을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
다고 생각해서 물었던 것인데 그 남자는 비실비실 웃으면서 했다는
말이 ,
그냥 한번 그래봤어요. 그냥 가세요.'
하고는 후딱 사라져 버렸다.
주리는 그때, 약간의 충격을 받았었다. 무슨 남자가 저러지? 하고
한참동안이나 멍하니 서 있다가 그 자리를 떴던 기억이 났다,
그때 그 남자는 그 말만을 남겨 놓은 채 주리를 앞질러 걸어가고
있었다. 정장을 하고선 멀정하게 금테안경까지 낀 남자가 무심코
다가와서 바로 귀밑에다 대고 무언가를 중얼거린 그 사건은 분명
현대인의 질병의 하나일 거라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식으로 요즘 남자들 중에 머리가 돌아 버린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러다가 밤중에 여자가 술이 취해 휘청거리기라도 했다면
은근히 다가가서 갖은 수작을 다 부릴 수가 있는 세상이었다
그러한 것이 더 심해지면 여자의 은밀한 부위를 흘끔거리며 살피
거나, 여자가 헤퍼져서 노출이 쉽게 되기를 바라고 무작정 뒤를 따
라오는 치들도 있었다.
주리는 의사가 지어준 약 생각이 났다, 아직 하혈 같은 건 없었지
만 식사 때에 맞춰 약을 먹으라고 지어준 약을 기억해내자. 갑자기
배고픔을 느꼈다.
그녀는 낮에 혜진과 같이 먹었던 분식 외엔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음을 기억해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골몰히 생각하
려고 그랬던 것 같았는데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건 한줌도 되지 않는
먼지들뿐이었다.
주리는 편의점으로 내려가서 컵라면으로라도 간단히 끼너를 때우
고 나서 약을 먹을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방의 공간 속으로 내려
간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아파트 광장을 가로질러 그 끝부분에 바로 상가의 24시간 편의점
이 있었지만 두려움이 앞섰다. 어디에선가 그 나쁜 놈들이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가 왈칵 덤벼들 것만 같았다
주리는 망설이고 또 망설이기만 하다가 결국 11시가 다 되어서야
사온 미역을 물에 당가 불리고, 소고기를 잘게 썰어 넣고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밥은 어제 지어 놓은 밥이 밥통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으므로 새
로 지을 필요가 없었다.
미역국이 끓으면서 구수한 냄새가 사방에 퍼졌다. 부산에 있을
땐.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을 먹어보긴 했으나 이렇게 주리 혼자
서 만들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대충 눈여겨본 짐작으로 미역을 넣고. 소고기를 썰어 넣고. 나중
에 파를 숭숭 썰어 띄워 놓으면 되리라고 짐작할 뿐이다. 그리고 또
있다. 구수한 냄새刃 장본인이 고소한 맛을 씩는 참캐간루에 있다
는 것을.
저녁을 먹고 나서 약을 먹었다.
주리는 서둘러 설거지를 마치고는 얼른 불을 끄고 누웠다 침대
머리맡의 창가로 모처럼만에 보는 달빛이 새어들고 있는 게 보였
다. 반달이었다
아직 채워지지 알은 반달은 노란 빛을 내뿜으며 하늘 어딘가에
걸려 있었다. 창문을 통해 잘 보이도록 누군가가 맞춤한 자리에 내
걸어 놓은 것 같았다.
어디서 오는 슬픔일까,
넘실대며 잔물살처럼 다가오는 슬픔이 가슴을 살랑살랑 채우며
쉽사리 잠들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가만히 눈을 감아도, 흑은 눈을 떠서도 의식에 붙잡히지 않는 그
런 고요의 침묵이 그림자처럼 생각 속을 오가며 잠을 쫓아내고 있
었다.
어둠 속에서 간신히 올려다본 사내들의 거친 어둠 덩어리가 눈앞
에 어른거리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아퐁.
처음엔 그것도 몰랐다. 잠깐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있었지만, 그
다음부턴 온몸이 묵직한 아픔으로 시달리기만 했다.
이때까지 한번도 과격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곳이 요 며칠 사이
에 함부로 다루어지면서 으깨져 버린 것처럼 슬퍼졌다. 그리 소중
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불안해지고. 또 자꾸만 누
군가를 죽이고 싶도록 분한 생각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신의 몸에 함부로 씨앗을 퍼뜨리고, 오늘 아침 산부인과를 찾
아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든 그 어둠의 자식들에게 예리한 칼
날을 꽃아주고 싶도록 이가 갈렸다,
그녀는 생각하면 할수록 그랬다. 이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
각을 고쳐먹기도 했지만 한번 기억 속에 박혀 머린 아픔은 쉽게 사
그라들 줄 몰랐다.
-
-
그린 호프에서
아직 아르바이트를 할 만큼 다 완쾌된 것은 아니었지만 호프집
사장과의 약속도 있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일터로 나갔다, 저녁 6시
부터 시작하는 아르바이트 시간이 다소 마음에 걸렸다,
처음엔 학교를 마치고 나서 좀 쉬었다가 나오는 것을 고려해서
저녁을 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학교를 그만둔 마당에 굳이 저녁 시
간을 택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러나 밤장사가 주된 호프집에서 낮시간의 아르바이트는 필요조
차 없었다.
서 아르바이트생이 하는 것을 본 것은 있었지만 막상 하려고 하니
까 그것도 어려웠다.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손님이 아직 들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몸을 두며. 시선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도 몰
랐다.
사장이 자리에 앉아 있는다고 종업원인 주제에 같이 의자에 앉아
신문을 보거나 책을 볼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주방으로 들어가 주
방일을 도을 수도 없는 노룻이었다.
주인이 없다면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겠는데, 주인이 실내에 밌었
으므로 주리는 몸둘 바를 몰랐다.
주리는 출입구 쪽의 통유리창 곁으로 가서 바깥을 내다보며 서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퇴근시간이라는 것을 깨달
았다.
길거리로 몰려나오는 사람들의 행렬.
둘씩, 아니면 셋씩 작은 손가방을 든 채 일렬 횡대로 인도를 걸어
오며 무언가 재잘거리는 모습들이 보였다.
한참동안 서 있었더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주리는 참을 수 없어
살그머니 유리창가의 의자에 앉았다.
엉덩이를 의자 반쪽에 겨우 걸쳤다, 언제라도 손님이 안으로 들
어오면 얼른 일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탁자에 한 손을 짚은 채, 주인을 돌아봤다.
남자 주인은 약간 머리가 벗어진. 삼십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키
가 작고 아랫배가 불룩 튀어나온 주인은 말이 없는 듯했다.
그저 신문을 보고 있다가 무심코 얼굴을 들었다가 주리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고개를 숙여 신문을 들여다보는 것뿐이었다. 그런
볼품없이 생긴 주인을 보자, 주리는 다소 마음이 놓였다.
흑시라도 주인이 영악해서 돈만 알고 사람을 몰라보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는 일시에 사라졌다. 그런 일자리라면 정말 피곤할 것이
라는 생각을 했던 탓이었다,
주리는 일단 주인의 수더분하면서도 약간은 미련해 보이는 모습
에서 다소 안도감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학생, 이 신문 가져다 봐. 심심할 테니."
주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인에게로 갔다.
주인이 신문을 접어들고는 주리가 다가을 때까지 계속 그러고 있
었다. 주리는 그런 주인의 팔을 생각해셔 잽싸게 다가가 신문을 받
았다.
자리로 돌아와 편안하게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읽는 신문이란 한 글자라도 빠뜨리지 않고 느긋하게 읽을 수 있어
서 좋았다.
가능하면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신문을 다 읽고 나면 다시 심심
해지지 않도록.
신문을 읽다가 소변이 마려워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무심
코 일어나면서 흘끗 본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이번엔 주인이 먼저 눈길을 돌리느라 허등댔다. 그 눈길이 이상
하다 싶었다.
주리는 순간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일부러 주인을 등지
고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는데 주인은 주리의 등이며. 작은 엉덩이
께를 보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러다가 주리가 불쑥 일어나는 바람에 눈길부터 놀라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녀는 내심 모른 체하고서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래쪽이 아직
은 약간 따가웠다. 소변이 묻을 때마다 소금기가 닿아서인지 쓰리
고 아팠다.
주리가 소변을 보고 나오는데 언제 들어왔는지 주인이 서성이고
있었다.
주리는 약간 당황되고 놀라웠다. 미처 물을 내리지 않고 소변을
보느라 소변을 보는 소리가 그대로 다 들렸을 거라고 생각하니 부
끄러웠다.
여자들이 소변을 보는 소리는 남자들처럼 물소리만 내는 것이 아
니라. 쇳소리가 같이 났기 때문이었다,
주리가 주인 옆을 빠져나오려는데,
"3학년이라고 그랬나"
주인이 소변을 보러 왔는지 아니면 대변을 보러 들어왔는지 모
르겠지만 아무런 동작도 하지 않은 채, 불쑥 물어왔다_
'네."
주리가 짧게 대답하고 나가려 하자,
"마칠 때까지 있는다고 했지-괜찮겠어?
주인은 주리가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니냐고 묻는 것 같았다.
마치 오빠가 누이한테 묻는 듯한 그런 질문이었다. 자상함이라고
하기엔 너무 낯 간지러웠고. 주인이 아르바이트생에게 베푸는 관심
정도일 것이었다.
'네."
"그래주면 좋고. 한 사람이 죽 맡아서 하는 게 손님들한텐 좋거
든. 그래야 단골도 생기는 법이고,,,,, ,."
주인은 말을 드문드문 끊어서 했다 그러면서도 할말은 다 하는
듯했다.
"아가씨처럼 생겼으면 매상이 더 오를 거야. 우리집은 장사가 잘
되는 편이거든 더 많은 매상이 오르면 그때 봐서 시간당 급료를 을
려주지 ."
주리는 얼른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직 주인의 말이 채 끝나지 않아 움직이지 못하고 있
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말은 나와주지 않
았다.
주인이 지퍼를 내리는 소리를 듣고서는 얼른 그곳을 나왔다.
주리는 실내가 꾀나 고급스럽게 꾸며진 호프집이라고 생각했다.
주인이 없는 틈을 타 찬찬히 벽지며, 천장을 쳐다보다가 꾀나 고급
으로 --
에 걸려 있는 조그마한 고성능 스피커에서는 '뉴욕 스테이트 오브
마인' 이라는 재즈 음악이 흘러나왔다.
굵은 바리톤의 남자 가수가 흥겹게 부르는, 마치 가벼운 탭댄스
를 추며 부르는 듯한 감미로운 곡이었다,
주리는 의자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고 있는데 주인이 걸어오는 기
척이 느껴졌다
주리가 일어서려고 하자,
"앉아 있어 이제 슬슬 손님이 들 시간이야, 나중엔 앉을 시간도
없을 거야."
하고는 앞자리로 와서 앉았다, 그러고는 그는 주방을 향해 소리쳤
다.
"어이 , 김군아. 여기 오렌지 주스나 가져와라."
그러고선 주인은 다시 정면으로 앉았다.
주리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가 빙긋 웃어보였다.
'단골들이 많이 들끓겠는걸. 학교에서도 남학생들이 많이 따를
거 같아."
주인은 밑도 끝도 없는 말을 꺼냈다.
주리는 애써 웃음을 지었지만 말끝에 묻어나는 의미가 무엇일까
싶은 생각에 기쁜 마음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웃어주었을 뿐이었다.
"이런 덴 남자들이 술을 잘 따라주거든. 간단히 받아서 사양하는
듯하면서 안 마시는 게 좋을 거야. 술을 다 받아마시면 나중엔 일도
못할 거야. 그리고 이런 데선 흔히 남자들이 그래. 기분이 좋아도
한잔, 나빠도 한잔이거든. 그러다가,,,,,, 아 참, 이름이 뭐라고 했
지-
' 남주리 ."
주리가 대답하자
"으응, 주리라고 그랬지. 남자들은 그래. 예쁜 여자가 있으면 같
이 술을 마시고 싶어하거든. 그러다가 나중엔 같이 나갈 수 없느냐
고 하기도 하고,,,,,,. 경희, 갠 여기서 어쩌다가 대학생 손님하고
눈이 맞아 얼렁뚱땅 친한 사이가 돼버렸어, 같이 대만으로 배낭여
행을 간다고 하니까,,, ,, 개도 보통은 아냐. 벌써 남자한테 그런
식으로 나오니 ,
주인의 말에 주리는 단호하게 말꼬리를 잘랐다
'스런 건 염려마세요.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주리의 말에 주인은 희미하게 웃음 지으면서 만족해 하는 얼굴이
었다.
주인의 그런 충고가 싫지 않게 느껴졌다.
화장실에서의 태도에선 불쾌감을 느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의
그는 단지 그녀를 위해서 하는 소리 같았다
조금 있으려니까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그때부터 주리는 바빠지
기 시작했다.
메뉴판을 내밀고. 손님이 메뉴를 고르면 그걸 쪽지에 써서 주방
안으로 들이밀었다. 그러고선 다시 손님이 있는 테이블을 돌다가
주문을 받거나, 아니면 주방에서 내논 안주를 꺼내 갖다주는 일을
도 주리의 일이었다.
(그린 호프)에는 밤이 깊어갈수록 더 많은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그만큼 주리도 더 바빠졌다.
잠시도 앉아 있을 틈이 없었다.
한쪽 벽쪽에 서 있다가 어느 테이블에서건 손님이 손을 치켜올리
기만 하면 얼른 달려가야 했다.
모두가 처음부터 마실 것들과 안주를 시켜 놓고서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마시면서 부족한 것을 자꾸 시켰으므로 주리 혼자로
는 바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아는 학생들이이라도 찾아올까봐 약간 겁이 났지만 시간
이 점점 지나면서 그러한 염려도 사라져 버렸다.
이런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것이 무슨 죄가 되겠는가 하는
마음과. 마주치더라도 열싱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도 이해하리
라는 것이었다
주리는 언제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 버렸는지 몰랐다. 손님들이
차츰 나가면서 빈 자리가 많아졌다.
그제서야 한가한 나머지 벽시계를 쳐다봤는데 벌써 12시에 가까
운 시간이었다.
(그린 호프)는 12시면 장사가 끝나는 시간이었다.
"여어, 오늘 주리가 새로 와서 그런지 장사가 잘 됐어."
주인은 기분 좋다는 듯이 말을 했다. 주리가 탁자를 훔치고 있는
데 뒤에서 하는 말이었다.
'그게 뭐 저 때문인가요? 제가 오늘부터 나왔다는 걸 알고서 찾아
온 사람이 있나요 뭐. 그전 단골들이 찾아온 거겠죠."
주리는 주인이 기분 좋아하는 모습에 웃으면서 대꾸했다.
"아니지. 손림들은 새로 온 주리 때문에 술을 더 마신 거라고. 원
래 그런 거야. 예쁜 아가씨가 있으면 손님들은 술을 더 마셔. 그게
술기분이라는 거지."
그 말을 듣는 게 싫진 않았다.
주리는 탁자를 다 닦아 놓고 재떨이를 비우기 시작했다, 쓰레기
통에 재떨이를 비우고는 주방으로 갖다주면 주방장이 말끔히 씻어
놓는 모양이었다.
주리는 그 일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아르바이트를 모두 마친 것이
라고 생각했다
"어때? 우리, 기분인데 같이 술이나 한잔 하고 들어갈까-
주인이 말을 꺼냈다.
"전 몸이 안 좋아서요. 일찍 들어가봐야 하거든요. 공부도 밀렸고
주리는 그렇게 둘러댔다.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다음에도 기회는 있으니까. 장사가 오늘
처럼만 되면 좋겠어. 오늘 바빴지?
'네 바빴어요. 손님이 꾀 많은 것 같던데요. 맨날 이래요?
주리는 주인의 흥을 돋궈주고 싶었다.
"그렇지. 그런데 오늘은 좀더 많았던 것 같아. 매상이 전날보다
더 올랐는걸. 그건 다 주리가 처음 나와서 그런 걸 거야."
주리는 칭찬을 듣는 게 좋았다. 같은 갑시이면 짜증보다는 칭찬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의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주리는 퇴근을 서둘렀다. 이미 늦은 밤이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조급했다. 어서 빨리 아파트로 돌아가서 흔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
었다.
"안녕히 가세요."
주리는 주방장인 김군과 주인을 향해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들이
퇴근할 생각은 않고 얼정거리고 있는 게 못마땅했다. 그래서 얼른
인사를 해버리고는 퇴근해 버리고 싶었던 것이었다.
주리는 김군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얼른 뒤따라 나왔다.
"아니, 내가 태워다 주지 "
"뤘어요. 여기서 가까운걸요. 혼자 갈래요."
''아냐. 오늘 처음이라 피곤할 텐데 얼른 내 차로 태워다 주고 가
지 뭐. 1분만 기다려. 문만 잠그면 되니까"
그러고는 얼른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주리는 그 자리에 서 있으면서 난감해 했다. 그냥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첫날부터 주인의 호의를 그런 식으로 무시해 버리고 싶진 않았
다.
이미 깊어진 밤거리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집으로 돌아
가기 위해 택시를 잡으려 손을 치켜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으슥
한 골목길에다 대고 오줌을 누느라 벽을 잡고 서 있는 취객들의 모
습도 보였다.
밤 12시의 서울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차들이 질주하는 차도
로 내려서서 마구 손을 흔들어대는 모습을 보고 있자, 비로소 주리
는 약간씩 밤이 두려워지는 것이었다.
"됐어, 가자구. 차는 저쪽 주차장에 세워져 있어 "
주인의 말에 주리는 할 수 없이 따라 걸었다.
주차장은 (그린 호프)에서 불과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
었다,
주리는 주인의 옆좌석에 앉아 어둠을 예리하게 뚫는 헤드라이트
불빛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파트까지는 불과 버스 두 정거장 거리
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아무런 두려움 같은 건 없었다. 가는 동안에
넓은 도로의 다소 밝은 불빛 때문인지 조금은 편안한 마음이었다
"집에 어른들이 있어요"
주인은 갑작스럽게 존댓말을 썼다
"아뇨. 저 혼자,,,, ,,."
주리는 괜히 그런 말을 했다 싶었다. 흔자, 라는 말은 될 수 있으
면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공부하느라 힘들겠군,,,,, ."
젊은 사장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서로 말이 없었
"됐어요. 다 왔어요. 여기서 내려서 조금 걸어가면 돼요."
"어딘데-
"저쪽, 아파트예요."
주리는 아무렇게나 손가락을 들어 저쪽이라고만 말했다. 그런데
아파트라는 말을 놓칠 주인이 아니었다
"아파트라면서? 그럼 아파트까진 들어갈 수 있잖아-거기까지 태
워다 줄게."
'됫어요. 여기서 그만 내릴게요."
주리는 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차에서 내렸다. 차 안의 어둠 속
에 잠겨 있는 그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재빨리 걷기 시작했다,
걸어가다가 차가 떠나는 소릴 들었다. 그녀는 그제서야 다시금
안심이 되었다
하여튼 그녀는 요즘 들어 자꾸만 불안해지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밑도 끝도 없이 자꾸만 자신을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넣으려는 듯한
불안이었다.
아파트로 들어와 입구의 문을 꼭 걸어 잠근 다음에서야 마음이
놓였다.
주리는 하룻동안의 피로를 느낄 새도 없었다.
문을 잠그고, 옷을 벗고 얼른 욕탕으로 들어갔다. 그래곡만 하루
의 피로를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욕탕에 앉아 비로소 평안을 느꼈다.
하루라는 시간이 얼마나 길고 엄청난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 같
았다.
낮 동안의 지루함, 그리고 저녁 시간부터의 낯선 시간들. 그 낯선
시간들에 둘러싸여 그녀는 끝까지 버터냈던 것이다, 스스로 이를
악물며 참으면서 삶의 현장에서 돈을 벌었던 것이다
굳이 이러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한번 결심한 것에 대해 끝까지 밀어붙일 생
각이다,
어려움도 나중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란 나름대로의 생각이었
다.
이 세상을 모르고 살아가는 편안함보다 차라리 이 세상의 지옥을
알고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일 것이라는 의지이
기도 했다.
그녀는 당분간 낮엔 사진학원에 등록해서 사진 기술을 배우고,
저녁부턴 (그린 호프)에 나가 아르바이트를 계속할 생각이었다 그
렇게 해서 어느 정도 사진 기술을 터득하면 사진과 연관되는 업종
에서 일해 볼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낮 시간 동안의 피로가 조금씩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시간이 가장 느긋하고 편안
했다,
밤 늦은 새벽에 목욕탕 안에 갇혀 있는 즐거움. 그녀는 그런 편안
한 욕탕 안에서 잠들고 싶어졌다.
욕조의 머리맡에 머리를 기댄 채, 지그시 눈을 감았다. 따스함이
온몸 구석구석을 파고들면서 나른하게 했다.
더이상의 행복이 없을 것처럼 지극히 평온한 느낌이었다. 물 속
에 잠긴 두 팔이 부유하듯이 떠 있는 것도 편안함을 더했고, 아무렇
게나 벌린 두 다리의 편안함도 역시 그러했다. 모든 것이 너무나 편
안하여 감미로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더이상의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학교
에 대한 애착도, 김 대리한테 당했던 미움도, 그리고 강간을 당했을
적의 원망도 들지 않았다 그건 순전히 과거의 일에 지나지 않았다.
몸에 묻은 얼룩 같은 것. 커피를 마시다가 커피를 흘린 것처럼 육체
에 새겨진 얼룩일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따스했던 물이 점점 식어가면서 그녀는
눈을 떴다,
온수를 더 틀어 놓았다. 욕조 밖으로 물이 철철 흘러넘쳤지만 그
녀는 물을 잠그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물살에 일렁이며 내려다보이는 육체. 그 육체의 싱싱함이 바로
죄악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젊음이 바로 죄악을 불러들인 결과가 되고 말
았던 것이다.
두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만져보았다. 작고 팽팽한 긴장감이 도
는 가슴은 손바닥을 펴서 쥐기에 안성맞춤일 정도였다, 더 크지도,
자지도 않은 알맞은 가슴이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그 밑으로 길게 뻗어내린 배 부위는 청바지를 입거나. 스
커트를 입어도 전혀 부담감을 주지 않고 맵시를 살려주었다. 그녀
의 손이 어루만질 때마다 젊다는 표시인 탄력감이 만져졌다,
나에게 무슨 죄가 있어 그런 몹쓸 일들을 한꺼번에 당했는지
그 숲을 짓이기면서 달려나간 남자들의 욕심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리고 그 밑의 찢어질 듯한 아픔도 기억났다.
이젠 다 나았지만 며칠 동안 따끔거리고 아팠던 기억들. 거울에
비춰보면 그곳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와
들락거리던 그곳은 기억의 가장 아픈 곳이었다.
비눗물로 몇 번이나 씻고 또 씻지 않았던가.
마음에 없는 행위는 곧 아픔이었다. 생살을 찢으면서 들어오는
남성 때문에 더욱 그러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주리는 약간 겁이 났다.
'혹시, 이러다가 불감증이 되어 버리는 건 아닌지 .
여자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으면 그것이 곧 불감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한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어느 프로에서였더라. 그녀는 어느 TV프로에서 봤던 정신과 의
사의 말이 떠올랐다,
여자의 불행은 불감증에서 비롯된다는 말.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온몸이 굳어지면서 정신이 번
쩍 들었다.
혹시, 자신이 그런 불감증에 걸리지는 않았나 하는 불안감이 엄
습해 왔다.
깊은 한숨이 잇사이로 번져나오는 것도 어찌할 수 없는 노룻이었
다,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
다시 물결이 맨살을 간지럽히는 것을 느꼈다. 이런 날은 정말 물
속에서 잠을 자고 싶었다. 그녀는 도취된 듯, 오랫동안 물 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사진 기술이란 간단명료한 것 같으면서도 어려웠다. 자동카메라
를 많이 찍어보았던 주리는 수동카메라 역시 그리 어려을 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초의 생각에 약간의 수정이 필요했다.
어떻게 기술적으로 찍을 수 있을까만 생각하고 입문한 학원에서
주리는 기술 이전에 이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빛의 광량을 눈대중으로 가늠해서 조리개의 수치와 셔터 속도를
정하고, 햇빛의 각도까지도 고려해서 촬영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이론적이면서도 순전히 자신의 감각만으로 실행해야
하는 카메라 기법은 하루 이틀에 완성되어질 그런 성질의 것이 아
니었다. 이론은 이론대로 배우면서 열심히 찍어보는 수밖에 없었
다.
하룻동안의 햇빛의 광량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마련이고, 그에
따라서 카메라를 가장 적당한 조리개와 셔터 속도에 맞춘다는 것은
컴퓨터 이상의 감각을 요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며칠 동안에 터득한 지식으로 몇 컷 사진을 찍어봤다. 17
분 칼라 현상소로 달려가 기다렸다가 찾은 사진에서는 영 엉망인
채로 찍혀 나왔다,
주리는 사진을 보는 순간, 차라리 순 초보자가 찍은 사진만도 못
한 것에 깊은 실망감을 느꼈었다.
그녀는 다시 대학로로 달려가서 그럴 듯한 모습들을 열심히 찍어
댔다.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는 연인들의 모습을 찍느라 카메라를 들이
댔을 땐, 옆에 있던 사람들이 무슨 전문 사진작가가 찍은 것인 양
빙 둘러서서 쳐다보는 것에 질려 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흘끔거리며 자신을 쳐다보는 연인들의 낯선 눈초리
그녀는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그때서야 깨달았

필름을 수십 통 버렸을 때까지도 그랬다.
이론대로 했다면 곧이곧대로 찍혀 나와야 할 것인데도 실제론 그
렇지 못했다
노출 부족으로 나오거나, 아니면 노출 과다로 인해 검게 나오거
나 희멀겋게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씩은 핀이 나가 사진이 또
렷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녀는 자꾸 찍으면 찍을수록 어려움을
느꼈다,
사진이란 그랬다, 처음엔 쉬운 것 같았지만 점점 어려워지는 것
이 바로 사진이었다
주리는 낮 시간의 사진 강의를 듣고 나서 오후엔 쏘다니면서 사
진을 찍어댔다.
그러고는 6시에 맞춰서 (그린 호프)로 달려갔다. 카메라 가방을
주방에 맡기고 나오는데 사장이 카운터에 있다가 말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손님이 좀 많을 것 같군. 오후부터 나 혼자
하느라고 혼났어 "
그러고 보니 벌써 토요일이라는 생각이 났다 실내엔 제법 손님
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니 사장 혼자서 주문을 받고 갖다주느라 애를 먹었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주리는 미안한 마음도, 그렇다고 당당한 마음도 아너어서 얼른
앞치마를 두르고는 테이블을 돌았다.
주리는 어차피 토요일이고 평일 구분 없이 매일 6시부터 일하기
로 약속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이 여기요. 맥주 3,000CC만 더 갖다조요."
테이블에서 주문을 받아적었다. 그리고 다시 다른 테이블을 돌며
안주며 맥주를 주문받아 주방으로 밀어넣었다. 그러고는 다시 주문
한 테이블로 갖다주면 되었다.
주리는 -그린 호프)로 나오는 시간부터 계속 바빴다. 잠시도 쉴
틈이 없이 시켜대는 통에 한 자리에 서 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주문을 받아야 했고, 또 날라다 주느라 몸이 둘이
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주문을 받은 쪽지를 주방으로 밀어넣고서 서 있는데 사장이 다가
왔다
힘들지-오늘은 손님이 많아. 난 좋은데 주리가 힘들겠어."
사장의 말에 주리는 도리질을 하면서,
"아니예요. 손님이 없는 것보다는 많은 게 낫죠. 전 괜찮아요."
하고는 생긋 웃어보였다.
긴 머리를 뒤로 쓸어 모으며 주방에서 나온 안주를 집어 다시 테
이블로 갔다 테이블로 가면서도 연신 지나는 테이블을 쳐다보는
게 조금이라도 발걸음을 줄이는 것이어서 주리는 가면서도 주문을
받았다.
어느 테이블에서 맥주 얼마를 시키고, 어느 테이블에서 안주 무
엇을 시켰는가를 외워둬서 나중에 쪽지에 적어서 주방 안으로 밀면
되었다
"아가씨 , 학생인가? 아르바이트?
구석진 테이블에 갔을 때, 그렇게 질문을 해오는 남자가 있었다.
나이는 한 서른쯤 되었을까. 서너 명의 남자들과 같이 온 남자가 그
렇게 물어왔다.
'네 . 아르바이트예요."
주리는 당당히 그렇게 말했다.
"이곳 분위기가 봬나 좋아. 그리고 아가치도 상당히 미인이고. 전
공이 뭐지?
주리는 웃기만 했다.
이런 곳에서 전공을 말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저 웃음으로서만
대답을 대신할 뿐이었다.
그 남자는 연신 주리의 위차래를 훌어보며 말을 걸어왔다.
"우린 상시치 샐러리맨들이거든. 직원들이야. 우리도 대학 다닐
땐 그랬어. 꿈과 희망이 있었지. 그런데 막상 직장이라고 들어가 보
니말짱황이야 ----""' -' '
꿈이야. 우리랑 같이 술이나 한잔 하지 그래."
그 말에 주리는 점잖게 사양의 표시를 했다.
역시 웃음으로.
"아직은 모르는 모양이야. 이 아가치도 아직 꿈을 덜 깼어. 나중
에 대학을졸업하고사회라는델 나와보면 그땐내 말알거야. 안
그러니?'
그 남자는 약간 술이 취했는지 처음엔 주리한테 말을 하다가 나
중엔 동료들에게 묻고 있었다.
'그럼, 그럼 우리가 다 선배들이지. 인생이란 모름지기 선배들한
테서 배우는 거야. 대학에서도 선배가 최고듯이 사회에서도 역시
선배가 최곤기라, 하하하."
태이블의 남자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도 들어줘야 했다,
주리는 옆에 서서 같이 따라서 웃어야 했다,
전혀 다른 뜻이 없이 말을 해주는 남자들의 따스한 시선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다.
인생이란 배우고 또 배워도 역시 모자람뿐이었다, 그들이 하는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부족한 거 있으시면 또 시키세요. 많이 갖다 드릴게

주리는 목례를 하면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는 12시가 다 되어서야 테이블이 비기 시작했
다.
주리는 테이블의 빈 잔들과 피처들을 주방으로 날라주곤 탁자를
닦기 시작했다 그때가 바로 술집의 하루 장사를 마무리하는 것이
어서 주리와 주방장만 바쁜 것이 아니라, 사장도 역시 바빴다.
주방장과 주리가 뒤처리를 위해 바쁘다면, 사장은 사장대로 하루
의 매상을 계산하고 정리하느라 바쁜 시간이었다
"주리야, 오늘은 매상이 최고로 올랐어. 이거 기분 좋은데. 오늘
은 그냥 갈 수 없을 것 같군."
사장이 주리를 향해 소리쳤다,
"그래요? 좋으시겠어요."
주리는 마지막 정리를 막 끝내고 있는 중이었다.
테이블에서 나온 쓰레기를 한데 모아 수거용 쓰레기 봉지에 담고
있었다,
"어이, 그런 건 주방장 김군에게 맡겨. 힘들잖아."
사장이 제법 생각해 주는 척했다
"아녜요, 다 쐈어요."
주리는 얼른 쓰레기 봉지를 밖에다 내놓고 안으로 들어왔다
주리의 일은 끝났지만 아직 주방장의 일은 끝나려면 멀었다 안
주 접시를 닦고. 맥주컵을 닦으려면 좀더 시간이 걸릴 터였다.
"우린 나가지. 김군은 남아서 뒤처리를 다 하고 나서 천천히 문을
닫고 가라,"
사장이 그렇게 말하자,
'알았습니다. 먼저 나가십쇼."
하고 김군이 소리쳤다.
주리는 밖으로 나오면서도 잠시 망설여졌다,
오늘따라 웬일인지 불안한 마음이었다, 그건 며칠 전에 혼자 욕
탕에서 느꼈던 불길한 예감 같은 것이었다.
사장이 오늘은 같이 술을 마시자고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망설
임이었다,
'뭘해?'
언제 나왔는지 사장이 옆에서 말했다
"그냥 갈게요. 피곤한 것 같아서요."
"그럼 . 가서 안주나 집어먹으면 되지 그래. 가자고."
하는 수 없었다. 주리는 사장을 따라 근처에서 하는 해장국집으
로 들어갔다. 얼른 해장국이나 먹고 가자는 말에 따라 들어간 것이
었다.
하루종일 서서 일했던 것이 피곤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리는
몸이 점점 무거워졌다, 한번 앉으니까 일어나기가 싫어질 정도였
다.
사장과 같이 식사를 하는 동안 사장은 청하를 시켜 마셨다, 자기
가 손수 잔을 따르려는 걸 주리가 따라주었다. 사장이 혼자 술을 따
르는 걸 보고서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어, 기분 좋은데."
사장이 단숨에 술을 들이키고는 잔을 주리한테로 내밀었다.
"전,,,,,,."
"아냐. 이런 날은 한잔쯤 하는 거야. 기분으로 마시는 거지, 많이
그 말은 권유보다도 더 엉격한 말이었다.
주리는 하는 수 없이 잔을 받았다.
그러고는 두 번에 나눠서 잔을 비워냈다. 다시 사장한테로 잔을
넘겼다.
"주리는 다 좋은데 술은 아직 안 배웠나 보지-
"아노. 조금은 해요. 그렇지만,,,,,,."
주리는 벌써 얼굴이 화끈거렸다. 피온한 탓도 있었다. 낮 동안엔
사진을 찍느라 쏘다녔고, 저녁부턴 (그린 호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몸이 피곤할 만도 했다.
"괜찮아, 이런 날은. 그리고 난 사장이 아니라 주리의 오빤걸 뭐.
내가 차로 데려다주지."
사장은 호탕하게 웃었다. 사장이 술을 비우고는 다시 잔을 주리
에게로 내밀었다
주리가 머뭇거리자.
"괜찮아. 이까짓 것 술몇 잔했다고취하나. 아직 한병도안되
-
그 말에 주리는 또 술잔을 받고 말았다
두 잔의 술이 들어가자, 약간 어지러워졌다. 이제는 그만 마셔야
겠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오늘은 술이 받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사
장과 같이 술을 마시기는 싫었다. 또 잔이 돌아왔지만 주리는 사양
했다.
"어허, 이건 약한 거라고. 오늘 피곤할 텐데 몇 잔 하고 들어가서
푹 자고 나면 피로가 풀릴 텐데 뭘 그래어차피 오늘은 공부를 못
할 거 아냐?"
"그래도요, ,
' 한 잔만 더 받아. 나머지 한 잔은 내가 마실게."
사장의 그 말에 주리는 또 잔을 받고 말았다. 벌써 몇 잔짼가. 주
리는 벌써 취하는 기분이었다.
앞을 보니 사장은 술이 부족한지 술병을 들어 들여다보고 있었
다.
"사장님, 술 또 하시게요-
주리는 더이상 마셔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왜-술이 겁나? 이 술은 마셔서 없애야 했다는 거 몰라? 술에서
인생 철학이 나오고 삶이란 게 나오는 거야, 난 가방끈이 짧아 잘은
모르겠지만 술만큼 진실한 건 없을걸?'
그러면서 사장은 웃었다.
사장도 술이 약한 모양이었다 벌써 달아오른 얼굴치 이마엔 굵
은 핏줄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럼, 딱 한 병만더요-전 두 잔만 마실게요."
주리는 그쯤에서 아예 선을 그었다.
"그럼, 그럼. 그렇게 하지."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두 병을 다 비웠다. 처음에 두 잔만
마시기로 한 주리는 세 잔을 마셨다. 그러고는 일어나서 걷는데 조
금 칠한 기분이었다.
오늘따라 그녀는 술기분이 나는 모양이었다 역하지 않으면서 곱
게 술이 취한 것이다.
차를 모는 사장의 옆에 앉아 있으면서 주리는 약간 불안했다 음
주운전을 하다가 어디론가 처박혀 버릴 것만 같았다.
주리가 불안스럽게 쳐다보자 사장이 그걸 알아차렸는지 액셀러레
이터를 세게 밟아댔다.
',술 안취했어, 봐."
질주하는 차의 앞쪽 헤드라이트 불빛이 영 불안하기만 하다.
주리는 사장의 오른쪽 팔을 가볍게 붙잡았다.
"사장림, 알았어요. 누가 술 취했다고 그랬어요? 천천히 몰아요."
그 말에 사장은 다시 차를 천천히 몰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렇게
단순했다.
주리의 말에 의기양양한 폼을 잡으며 운전하고 있는 사장의 모습
이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니 다소 마음이 놓이기는
했다.
주리는 술기운이 올라와서 시트에 머리를 기댔다.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라고 생각해서인지 잠간 기댄 것이 깜박 잠이 든 모양이
었다.
흔들리는 듯한 요동에 그녀는 어렴풋이 눈을 떴다. 아직 차가 달
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머. 내가, ,,,,."
주리는 얼른 일어나면서 사장을 쳐다봤다.
"피곤했던 모양이지-자길래 그냥 뒀어. 저번에 내렸던 장소까지
갔다가 안 깨길래 다시 차를 몰고 나온 거야."
"여기가 어디죠"
주리가 놀라 물었다.
앞쪽의 헤드라이트 불빛에 바라보이는 낯선 풍경에서 얼른 눈길
을 떼어 사장에게로 주었다.
'그냥 드라이브나 하려고. 외곽이야. 이제 술이 좀 깨는 것 같
주리는 할말을 잃어버렸다,
그 사이에 깜박 잠이 들었다니.
그것도 잠간이었다고 생각되었다.
너무 방심했던 탓일까.
그녀는 잠시 허탈한 기분이 되었다. 스스로를 단속하지 못한 안
타까움이 밀려왔다.
그걸 누구에게 탓할 것인가.
주리는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지금 서울로 가는 거예요"
사장은 말이 없었다 그저 앞만 열심히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말을 잃고 있다가 다시 물었다.
"서울로 가는 거냐구요?
"아니 . "
사장의 말은 짧고 단호했다. 그 말에서 딱딱함이 느껴졌다.
순간. 주리는 무서움을 느꼈다
-
좀전과는 달리 변해 버린 듯한 그의 태도. 주리는 갑자기 소름이
돋아나는 듯했다.
후두둑, 진저리를 치자,
"걱정 마. 드라이브나 하다가 돌아갈 거야."
역시 짧은 말이었다.
주리는 그를 쳐다보았다가 표정도 없는 그의 얼굴에서 다시 앞쪽
으로 시선을 주었다. 좁은 산길을 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인적이 전혀 없을 것 같은 길이었다. 길도 좁았을 뿐만 아니라,
아직 포장도 제대로 되지 않은 도로였다.
새벽 어둠을 가르고 헤드라이트 불빛이 비추자, 길설의 풀숲에서
잠을 자던 새들이 푸드득 날아올랐다. 눈이 부신 듯, 길 중간으로
뛰어나와 어리등절한 토끼들도 있었다, 불빛에 어쩔 줄 몰라 망설
이던 산토끼가 다시 달아나는 게 보였다
낯선 침입으로 인해 산짐승들이 놀라 달아나는 것을 보면서 주리
는 자꾸만 불안해졌다.
깊은 산 속이라는 것과 사람의 인적이라곤 없는 곳이어서 더욱
그랬다. 드라이브라고는 하지만 이런 곳에서 남자의 말은 믿을 만
한 것이 못 되었다.
주리는 점점 마음이 어두워졌다.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

주리는 다시 남자를 쳐다보았다. 묵무부답인 채로 운전에만 열중
하고 있는 그에게 말을 붙이는 것조차도 부담스러웠다.
이윽고 차는 산길 중턱에서 멈췄다. 헤드라이트를 그대로 켜둔
채, 그는 담배를 꺼내 피워물었다 그의 그런 행동이 차갑게 느껴졌
다.
'담배 피을 줄 알아?"
그가 담배를 건네왔다.
"아노. 못 피워요."
그가 말 없이 담배를 집어넣고는 몇 모금 연기를 뿜어냈다. 그때
까지도 주리는 불안할 뿐이었다
. 자신이 먼저 말할 이유가 없어졌다 이미 돌아가자고 몇 번 말을
했으므로.
"이런 새벽에 이렇게 같이 있으니까 참 좋군. 이런 데이트 해본
적없지?
'데이트라고 해야 되나? 이런 걸-,, ,, ,,서울을 빠져나오니까 기
분이 틀려 난 주리가 잠이 들었길래 그대로 이쪽으로 몰아 나중에
잠을 깨면 보여주고 싶었어. 전에 한번 와본 적이 있는 곳이야. 너
무 경치가 좋아서 좋은 상대가 있으면 언제라도 한번쯤 이곳엘 데
려오고 싶었지 ."
그는 자신의 마음만 털어놓고 있었다.
그가 담배를 다 피우고 나서 담배를 획 바깥으로 내던졌다. 그러
고는 라이트를 껐다, 캄캄한 밤이었다.
차 안의 계기판에서 나오는 불빛만이 어렴풋이 실내를 밝히고 있
었다. 주리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주리, 이런 데선 가만히 있는 거야 괜히 복잡하게 하지 말고."
그러면서 그가 손을 뻗어왔다. 주리가 옆으로 피하려고 문쪽으로
몸을 기댔지만 그의 손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어느새 그는 주리의 어깨를 잡아 나꿔챘다. 그리고 재빠르게 블
라우스 속으로 손이 쑥 들어왔다.
"왜 이래요1"
"가만 있으라고 그랬잖아, 이런 데는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 . 어차
피 우리 둘뿐이잖아-
그가 이번엔 한 손으로 의자를 뒤로 젖혀 주리를 쓰러뜨렸다.
주리는 일어나려고 발버등을 쳤지만 주리에겐 남자를 이길 만한
힙은 없었다.
그는 주리의 팔을 움지이지 못하도록 제압하고는 블라우스를 벗
겨냈다. 그리곤 그는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여전히 주리는 두 팔을 붙잡힌 채, 의자 뒤로 제압되어 있었으므
로 꼼짝할 수가 없었다.
주리가 몸을 뒤틀며 허리 부분을 들썩이자,
"자꾸 그러면 너만 해로워 그런다고 끝나는 게 아냐. 어차피 한
번은 해야잖아."
주리의 두 손이 남자의 억센 한 손에 의해 묶여지고. 그의 다른
한 손으로는 바지를 끌러내렸다. 주리는 필사적으로 다리를 오므렸
다, 그의 손이 다기릴려다가 멈칫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그게 아니었다. 머리 뒤로 두 손을 /
배 위로 얹혀졌다.
주리가 움직일 수 있는 건 허리뿐이었다, 그녀의 두 손은 그의 한
손에 의해 배 위에 결박되어지고, 그의 한 손은 주리의 한쪽 다리를
벌려 찍어 눌러댔다, 그리고 그는 맛있는 음식을 탐닉하듯 주리를
향해 공략해 들어오고 있었다.
"안 돼요. 이러지 마세요."
주리는 마지막 애원을 하듯 헐떡였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제발, , , ,
몸부림에도 한계가 있었라. 어쩌면 그는 그것을 노렸는지 모른
다.
그는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이미 많은 아르바이트생들을 그런
식으로 다뤄왔는지 그의 두 손과 혀는 능숙하게 각자 맡은 일을 충
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주리는 이제 더이상의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얼마나 오랜 시간
을 다퉜는지 모른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간 듯, 허탈해지기만 했
다.
'그래. 그렇게 조용히 있는 게 좋아. 그러면 덜 아프고.'
남자의 씨근덕거리는 소리가 뜨거운 김으로 다가왔다. 주리의 입
술을 덮으면서 기어이 그가 올라왔다,
주리는 저절로 입이 벌려지면서 가는 신음소리를 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목소리가 그의 입에 의해서 다시 봉해졌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차가 출렁거렸다, 살갗과 살갗이 서로 맞부
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어느새 잔물결처럼 찰싹이며 끝없
이 반복되었다.
불과 5분쯤 되었을까. 그런데도 그녀에게는 끔찍하게도 긴 시간
이었다 주리는 후닥닥 일어나려고 했지만 그것 역시 마음대로 되
질 않았다.
그의 몸이, 그의 두 손이 그녀를 찍어누르고 있었다,
'다 끝났어-"
그가 위에서 내뱉었다.
그런데 다 끝났어, 라는 말을 들음과 동시에 갑자기 허탈감이 엄
습해 왔다,
이젠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마음 속으로 복받쳐오르는 자신에 대한 원망만이 남아 있을 뿐이
었다.
'이럴 수가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왜 이렇게 되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치 이런 운명을 타고나기라도 한 듯이 어처구니없
게 당하게 된 것이 억울하고 분했다.
"끝났으니까 이젠 염려하지 말어."
남자가 다시 속삭였다.
그 속삭임이 귓가에 술기운으로 덥혀져 올 때, 주리는 그의 입을
꽉 물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만일, 그가 혀라도 집어넣는다
면 주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혀를 깨물어 버렸을지도 몰랐다.
주리가 잠잠해지자, 그는 두 손을 묶었던 팔을 풀었다. 그리곤 다
시 그녀의 가슴을 어르기 시작했다.
작은 원을 그리듯이 어렴풋하게 어루만지는 그의 손을 느끼며 주
리는 눈을 감아 버렸다. 더이상의 무슨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도 몸도 이미 탈진한 상태였을 뿐만 아니라 그가 보는 앞에
서 살아있다는 것조차도 싫었다 차라리 그가 이곳에서 자신의 목
이라도 졸라 죽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안해 나도 나쁜 놈은 아냐. 마음에 드니까 어쩔 수 없었어."
남자가 지껄이는 말에 구역질이 났다.
"욱,,,,,,."
주리는 얼른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다
"왜?
남자는 완전히 철면피다. 그녀가 하는 행동에 대해 못마땅해 하
는 눈치다.
그녀를 노려보는 눈초리가 매섭게 빛났다. 정말 나를 죽여 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리는 눈을 감은 채, 벽쪽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의 괴물
같은 얼굴이 꼴도 보기 싫었다.
"그러지 마라.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랄 수 있어. 넌 이미 처
녀가 아니었잖아? 누구랑 했지?
남자는 이제 거의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 말을 해서 더
짜릿한 자극을 얻으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많이 배운 놈한텐 주구 나 같은 놈한텐 못 주겠다는 거야. 그러
니까 나 같은 사람이 이러는 거지. 한번 육보시를 했다고 생각해
남자는 되지도 않은 말을 지껄였다.
(,남자가 하도 불쌍해서 한번 준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거야."
그것도 일종의 쾌감일 터였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저 오만한 태도에 주리는 또
한 번 진저리를 쳤다.
"자, 물어봐. 내가 미우면 꽉 물어도 되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넌 없어질 거야."
주리는 얼른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래 끝까지 그러겠다는 거군 "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남자의 두터운 손바닥이 날아왔다. 그녀
의 뺨에
그는 담배를 꺼내 피웠다. 운전대에 앉아 있는 그가 짐승처럼 얄
미웠다.
주리는 그를 노려보면서 어떠한 할말도 찾지 못했다. 단지 애꿎
은 눈물만이 앞을 가리고 있었다. 밤하늘이 점점 개이면서 조금씩
밝아지는 듯했다.
차를 타고 오면서도 주리는 계속 한 곳만 응시했다, 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꼿꼿이 앉아 있었다. 그를 쳐다보는 것조차 끔
찍하게 생각되었다.
창 밖을 스쳐 지나가는 가로수들을 바라보거나. 아니면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헤드라이트 불빛만 응시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겠지, 그러나 시간이 가면 차츰 잊혀질
거야. 인생이란 다 이런 거구나 하고 느껴질 테고. 난 네가 좋아서
그런 거라고."
그는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주리는 끝내 대꾸하지 않았다.
집 근처에까지 와서 내려줄 때까지도 그녀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
다.
차에사 내린 주리는 달아나듯이 달려서 아파트로 들어갔다. 들어
서자마자, 불도 켜지 않은 채, 그녀는 침대 위에 쓰러져 울었다.
아무리 울어도 마음 속의 찌꺼기는 없어지지 않았다. 산더미처럼
쌓인 찌꺼기가 마치 이삿짐을 꾸릴 때처럼, 게워내면 낼수록 더 많
이 튀어나왔다,
-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린 호프)에는 나가지 않았다.
그날 밤에 려었던 것을 생각하면 주리는 방잠을 자지 못했다. 아
무리 생각해 봐도 원통하고 분할 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강간죄
로 처넣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강간죄라는 것이 얼마나 치사한 죄명인가.
자신이 검탈을 당하고서도 그것을 함부로 벌할 수 없는 것이, 앞
길이 구만 리 같은 자신에게 영영토록 따라다니는 불명예스런 것이
어서 더욱이 그랬다.
조사를 받으러 다녀야 하고, 나중엔 법정에까지 나가서 증언을
해야 할 경우도 생기는 법이다.
법정에서 완강하게 부인하는 남자에게 내가 이러이러 해서 어디
가 찢어지고, 또 어떻게 하지 않았느냐고 조목조목 상세하게 설명
하기란 더욱 싫었다. 많은 방청객들이 보는 앞에서 선서를 하고 나
서 판사가 묻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곤욕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
차라리 개한테 떡 하나 던져줬다고 생각하라는 시쳇말처럼, 그녀
는 잠결에 당한 강간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미 잃어버린 것을 끝까지 기억했다고 해서
되돌아을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여자의 몸이란 한번 흔적을 남기면 영영 지워지지 않는 법. 그 흔
적을 지우려고 애쓰는 것보다 잊어버리는 편이 더 나았다.
주리는 불면의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
다.
머릿속은 온통 자갈로 꽉 채워진 것처럼 조금만 움직여도 와르
륵, 소리를 내며 기억을 죄다 흐트러 놓곤 했다.
몸은 물 먹은 솜처럼 피곤한데도 의식은 가물거리기만 할 뿐. 잠
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욕탕으로 들어가 따뜻한 물에 오래도록 있다가 나왔
지만 역시 그랬다
오늘은 학원에도 나가지 않았다. 오후 내내 뒤척거리기만 하다가
겨우 토스트 하나를 구워 먹었을 뿐이다.
이젠 임신 같은 것엔 관싱조차 없었다. 자포자기의 상태였다
벌써 몇 사람이 자신의 배 위를 스쳐갔는가.
그들은 하나같이 주리의 마음과는 상관 없이 짐승처럼 훔고 지나
간 것이었다.
남자들은 마치 섹스에 굶주린 짐승 같다. 여자들의 가랑이에서
나는 암내를 킁킁, 맡으며 길거리를 쏘다니다가 아무 장소에서나
배설의 즐거움을 느끼는 개와도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은 처음 김 대리에게 당했을 때부터 가졌던 생각이었
다, 그리고 주리는 최대한 조싱하려고 마음을 다잡아먹기도 했었
다.
그러나 운명이란 그렇질 못했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자
꾸만 몰아가고 있다는 불안감이 옥지어왔다,
이제는 나가는 것조차 불안해졌다. 이렇게 조용히 방 안에서만
살고 싶었다.
아파트 문을 튼튼히 잠가 놓고, 그 안에서 자유로이 살아갈 수 있
탁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흔히 사람들은 나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길거리에서 바라보는
세상 만물들의 움직임과 사람들의 모습에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
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강간을 당해본 여자라면 주리와 같은 대인공포증과 사
람에 대한 기피증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주리는 실내의 온도가 꾀 높은데도 불구하고 쌀쌀한 느낌이 들었
다. 그녀는 다시 온도 조절기를 비틀어 온도를 높였다. 그리곤 다시
침대 속으로 들어가 시트 자락을 깊숙이 끌어당겼다.
다시 누웠다. 그러고 나니 조금 편안해졌다.
어느 정도는 안심이 되기도 하였다. 자신을 보호할 만한 두터운
옷들을 껴입었으므로 흔자 느끼는 안정감이었다.
(그린 호프) 사장한테선 전화조차도 없었다. 일한 대가를 바란 것
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전화
를 걸어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해야 옳았다. 그리고 일한 급료를 받
아가야 하지 않느냐고 물어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일언반구도 없
이 침묵하고 있는 그 자식을 생각하면 점점 속이 끓어올랐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라도 했으면 그래도 편안히 잠을 잘 수 있
을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생각까지 들었었다.
지금 주리의 머릿속은 별의별 생각으로 인해 온통 진흙탕처럼 짓
이겨져 있었다.
사람을 망가뜨려 놓고 뻔뻔하게 앉아 있을 그놈을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처음보다, 두번째보다 더 복수심이 불타오르는 것은 양의
탈을 쓰고 친근하게 다가와 그런 식으로 깔아뭉갰다는 것 때문인지
도 모른다.
이제는 잊어버리고 앞으론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자꾸만 마음 한
귀퉁이가 스르르 무너지는 것 같아 마음이 잡혀지지 않았다,
마음은 곧 독약이었다. 생각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집착하게 되
면서 죽고 싶은 심정만 남게 되었다. 그러다가도 다시 마음을 다잡
아먹기도 했다.
이런 일로 앞으로의 내 인생을 포기해 버릴 순 없다. 독한 마음을
먹고 다시 일어서는 거야. 라고 제법 든든한 마음을 먹었다가 또 언
제 무너질지 몰라 허등대는 것이 반복되었다.
하루종일 그러다가 시간이 다 지나갔다. 나중엔 골머리가 깨어질
듯이 아프면서 모든 게 짜증났다.
차라리 학원에 나가 카메라라도 만지작거렸다면 이러지는 않았으
리라.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미 오후의 늦은 노을이 서서히 지면을 덮어오고 있는 중이어서
주리는 달리 할 만한 것이 없었다, 마냥 이렇게 누워 있거나, 거실
을 서성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어두워진 실내에 혼자 서성거린다는 것이 괴기스럽게 느껴졌으나
그녀는 그게 좋았다.
갑갑해진 옷을 훌훌 벗어 버린 채, 알몸으로 서성이며 음악을 들
었다. 굳이 어떤 음악을 들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냥 오디오를
켰는데 그 전에 넣어두었던 재즈가 흘러나왔다.
작은 미니 소파에 앉았다가도 그녀는 벌떡 일어나서 다시 걸어다
니기 시작했다. 앉아 있는다는 건 곧 자신의 침몰을 의미하는 것 같
기도 해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무한한 시간의 공간과 알맞게 어두워진 공간에서 혼자 유영하듯
이 걸어다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유령 같았다. 긴 머리카락을 풀
어 헤치고, 거기에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휘젓고
다니는 것이 다소 우스황스러웠지만 편했다
누군에겐가 반항하고 싶은 충동질. 바로 그것이었다. 보란 듯이
벗어 버리고, 머리카락을 손질하지 않은 채, 고독한 방랑자 같은 형
상으로 거실 안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일종의 시위라
고 할 수 있었다.
무책임하게 처신한 죄, 사람에게 방심한 죄값이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에게 악마라는 표현을 쓰고 싶었다.
그녀는 가끔씩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불규칙하게 새어나오는 한
숨을 처음엔 자신도 못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가 점점 그 숨소리가
커지면서, 그때서야 그녀는 그걸 깨달았던 것이다.
내가 왜 이러지?
스스로 반문도 해보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깊은 허탈감에서
자연스레 터져나오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충 저녁식사를 마치고 주리는 아파트 단지 안의 상가에서 비디
오 테이프를 빌려왔다, 편한 자세로 빌려온 비디오를 보고 있는데
영화 내용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이상한 장면들이 튀어나왔다. 소위
말하면, 포르노라는 것이었다.
주리는 침대에 엎드려 비디오를 보다 말고 벌떡 일어나 비디오를
꺼버렸다. 알몸의 남녀가 진창으로 뒹굴고 있는 장면이었다. 서론
도 본론도 없이 영화 중간에 갑자기 튀어나왔기 때문에 주리는 비
디오를 끄고 나서도 한참동안 얼굴이 달아올랐다,
전에 남자들한테 당했던 일들이 한꺼번에 생생하게 떠올라져서
저절로 치가 떨렸다.
주리는 얼굴을 파묻은 채, 한참동안 어쩔 줄을 몰랐다. 어떻게 해
서 영화 속에 저런 장면이 들어 있는 것인지, 정말 당혹스러우면서
도 기분이 나빴다,
비디오 가게 아저씨가 주리가 고른 테이프를 비닐 봉지에 넣어주
면서 힐끔거리던 것이 떠올랐다,
"손님들이 이 영화 좀 야하다고 그러던데요 학생이시죠?
그러면서 남자는 자꾸만 주리의 엉덩이를 홈쳐보는 것이었다.
그전에도 그랬다. 주리가 비디오 테이프를 고르느라 진열대에 바
싹 붙어서서 허리를 숙이거나, 아래쪽 진열대에 꽃힌 테이프를 살
펴보기 위해 쪼그려 앉을 때마다 그의 시선이 엉덩이께에 따갑게
와닿는 걸 느꼈었다.
계산을 마치고 나갈 때에도 역시 그랬다 요 앞에 잠깐 나갔다가
온다고 아무렇게나 껴입고 나간 꽉 끼인 청바지 탓이었다
여자란 무엇으로 사는가.
삶에 있어 남들과 똑같이 느끼며, 생각하며, 가지고 싶어하는 것
이 여자가 바라는 평등한 행복이라고 생각했다면, 그 어느 하나라
도 자신에게 없다는 것은 곧 불행이랄 수 있었다.
여자에게 불감증이란 가장 지독한 형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것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게 아리라. 후천적으로 남자한테서 오는
병이다. 남자에 따라 좌우되는 증세라고 본다면 여자가 겪어야 하
는 형벌치고는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닐까.
주리는 반듯이 누워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주리는 산 속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기억에 생생했다.
남자들이란 이상한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_
알 수 없는 감각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 같은 낯선 이물질처럼 느
껴졌다.
여자에게 가장 다정한 것 같으면서도 대단히 이기적이고, 때에
따라선 여자들에게 복수하려는 듯이 덤비는 앙숙인 것처럼 느껴졌
다.
여자를 보기만 하면 어떻게든 쓰러뜨려 마구잡이로 정복하려는
존재라는 느낌을 지을 수가 없었다
자신들의 쾌락을 위해 함부로 씨를 뿌려대고 나선 태연하게 돌아
서 버리는 낯선 존재 같은 것, 파렴치한 행동을 하고서도 불끄러움
조차 모르는 동물 같았다.
마치 넓은 초원에서 암컷을 만나 교미를 하고는 후딱 떠나 버리
는 방랑자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암컷이란 또 무엇인가.
쾌락을 위해서 교미를 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본능적으로 일어
난 자신의 몸의 변화에 의해 수컷이 달려들어 교미를 할 뿐, 그 이
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나운 수컷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할 수 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새끼를 낳을 때까지 수컷이 곁에서 기
다리든, 기다리지 않든지 간에 혼자서 초원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주리는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여자라는 것이 서글퍼졌다. 다
시 학교로 돌아가 늦은 학업을 계속하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기도
했다. 세상으로 너무 일찍 나와 버린 건 아닌가 하는 후회감이 생겨
나기도 했다,
캠퍼스 안에서는 순전히 서로가 마음에 맞는 커플들만이 연애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輸阮--
르뜨_
아르바이트-
성폭력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마
음과 몸을 허용할 수는 있어도 강제로 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이었다. 그렇다면 이 사회란 타락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마음에도 없는 사랑을 계속해야 될 때도 간혹 있었으며. 또 억지
로 관계를 가져야만 하는 때--있었다. 그런 사회에서의 여자란 지
극히 비참한 존재라고 생각되었다. 그녀가 요근래 당한 모든 일들
이 그랬다
성을 무기로 삼지 않는 한, 계속 그런 식으로 당하기만 하고 살아
야 했다는 것이 분통 터졌다.
이미 학교엔 휴학계를 낸 상태이므로 다음 학기 등록할 때까지는
할 수 없이 쉬어야만 했다. 아직 시간은 많았으므로 주리는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고 다시 좀전의 생각으로 돌아갔다
섹스라는 것이 무엇일까.
육체와 영혼의 호화스러운 안식일 것이다.
여분의 삶에서 부스러기를 조금 떼어내서 즐기는 그런 시간일 것
이다.
아니다. 어쩌면 삶의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자들은 어떻게 하면 더 질 좋은 섹스를 할 수 있을까만 골몰하
고 있는 동물이라고 생각하니 처음의 생각을 수정해야 할 것 같았

섹스는 삶의 부스러기가 아니라.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남자들은 틈만 나면 섹스 사냥을 즐기려는 사냥꾼처럼 행세
하려고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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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자들이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
처참히 무너지면서도 남자의 세계로 더 가까이 나아가지 않으면
삶에서 제외되는 그런 필요악의 틈새에서 악전고투를 해야 했다.
남자를 이기기 위해선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그런 운명.
주리는 자신의 알몸을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덮지 않은 알몸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자신의 알몸이 마치 잘 익은 복숭아처럼 싱싱
하게 느껴졌다.
봉긋 솟아오른 가슴이 아직 긴장감을 잃지 않고 있었고, 그 밑으
로 쭉 뻗어내린 다리엔 군살 하나 없었다,
보송보송한 털이 감싸고 있을 그 둔덕 밑으로 아름답게 생각되어
지는 샘이 거기 있을 것이었다. 그 샘에서는 향기나는 샘물이 새어
나오고, 때에 따라선 향기로운 음악도 새어나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모든 육체의 신비가 숨어 있어 생명을 탄생시키기도 하
고. 남자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천혜의 보금자리일 것이라고 생각
되었다.
자신에게도 기쁨을 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타인에게도 큰 기
쁨을 줄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다소 혐오스러운 감이 없진 않았지만 오로지 그곳을 통해서만 크
나큰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의 섭리일
것이다.
인간이 잘 사용하면 삶의 활력을 얻을 수가 있으며, 내일에 대한
럴I널
보랏빛 꿈을 잉태할 수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줘야 할 때 마응도 몸도 다 주어야
할 때는. 비로소 마지막으로 선택한 둘만의 최상의 보금자리이기도
했다.
그녀는 나른한 기분으로 누워 있었다. 온몸이 경직되느라 그러는
지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제서야 그녀는 스르르 잠이 들 수 있었다,
모델
처음으로 누드를 찍어봤다. 학원에서 외강을 나간 야외의 숲속에
서 일어난 일이었다
미리 학원에서는 고지가 있었다. 다음 주 일요일 오대산 계곡에
서 누드 촬영이 있을 거라는.
아침 일찔 버스를 타고 출발한 오대산에서 여자 모델을 주제로
해서 누드를 찍었다.
"자, 표정을 바꾸시고, 몸을 좀더 이쪽으로 돌리세요."
학원 강사의 지시에 따라 여자 모델은 몸을 틀면서 요염한 포즈
를 취했다.
아직 스물두엇밖에 되지 않았을 여자 모델은 전라다 촬영 감독
을 맡은 강사의 말에 따라 제각기 다른 포즈를 취하면서 웃음을 짓
곤 했다. 햇빛에 드러난 여자의 나신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은 몰랐
"손을 올려 자연스럽게 모자를 잡으시고."
그 말에 모델은 오른손을 올려 모자의 끄트머리를 가볍게 잡았
그러자 찰칵, 찰칵 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터졌다.
모델이 새로운 포즈를 취할 때마다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재빠르게 돌아가는 셔터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30명에 가까운 사람들에 둘러싸인 모델을 향해 수없이 셔터가 터
지고 나서 다시 새로운 포즈가 연출되었다
'다리를 조그만 더 벌리세요 그리고 수줍은 듯이 손으로 그곳을
가리고,,,.,,."
강사는 어려운 부탁까지 서슴없이 해댔다 그러나 모델은 그것도
F다 않고 그 지시대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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